6월 성모신심미사
마태오에 의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매번 사람들과 갈등을 빚고 힘든 이유가 그의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인데요. 어쩌면 너무 당연한 사안이지만 우린 그걸 잊어버리고 ‘내가 너를 안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그걸 몰라?’ 라며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더 문제가 되곤 하는데요. 상대를 안다고 여기고, 함부러 대하다가 낭패를 보는 때가 있지요. 이렇듯 사람 마음도 잘 모르는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이야기가 돌아가니까, 곤란한 마음으로 강론을 들으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이해해주고 헤아리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당신은 말씀하시지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우린 상대가 무엇을 할지 아예 모르진 않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바가 있지요. 무엇을 싫어하는 지, 어떤 것을 더 원하는 지를요. 개인적으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되는 거 아냐?’ 라는 것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가끔 공적인 일을 맡으면 스스로 사적인 만남과 관계를 정돈하거나, 언행에도 주의를 기울일 때가 생깁니다. 보통 주교님 이상급 되는 분들이 쓰는 성경구절이 있지요. “모든 이의 모든 것” 이라는 성경 구절입니다. 모든 이를 위해, 자신을 접어야만 하는 것을 감수해야 할 때가 생깁니다. 그래서 가까운 가족, 친지들도 이를 이해해주고 참아줘야만 합니다. 그게 그를 돕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요즘처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가 알던 사람이 등용되면서 이젠 나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감은 오히려 서로를 도와주는 거리감이 되곤 합니다. 참된 것을 아는 누군가에게만 해주지 않을 때 그것이 공적인 자세가 되어 모두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릇이 그렇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