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 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5. 7. 26. 오전 8: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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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7주일. 조부모와 노인의 날

 교회라는 곳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이는 곳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죠. 잠시 우리나라의 70-80년대 시절 교회로 가보겠습니다. 다들 어려웠던 때였고요. 한국인 신부님이 부족하여 아일랜드, 미국. 프랑스 등 외국 선교사 신부님들이 본당 주임 신부님을 맡아주던 때였습니다. 그때 여러분도 젊으셨지요. 한창 국가는 발전과 성장주의를 겪던 때였고요. 교회도 거기 발맞추어 교회가 커지고, 신자들을 적극적으로 불러 모았고요. 여기서 활동하는 맛, 성장하는 맛이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는 맛을 교회를 통해 느껴갔습니다. 서로가 나누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지냈으니까요. 그 이후 시간이 흘러 한창 활동하신 분들이 이제 노쇠해지게 됩니다. 40~50년이 지났으니까요. 물리적인 노화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로인해 안타까움이 빚어집니다. 이런 말씀들을 들려줍니다. 내가 늙어서 이제 쓸모가 없나봐요. 예전 같지 않아 활동도 못하고, 성당도 잘 못 나오는 게 참 죄스럽습니다속 깊은 이야기를 여러 본당을 통해 자주 듣곤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이런 때에 어떤 말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줄까요?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제정하신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이하며 성 아우구스티노가 쓴 시편 해설서에 노년의 시기란 무엇인가요?’ 란 질문에 하느님은 이렇게 답하신다고 전해줍니다. 너의 힘이 참으로 약해지게 하여라. 그러면 나의 위력이 네 안에 머물러, 바오로 사도처럼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힘이 약해지게 하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의 표현이란 걸 아십니까? 내가 약해질 때, 반대로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눈과 귀를 밝혀주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강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존감,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와 품위를 지키겠다는 자존심, 그리고 일이나 활동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자신감을 세우게 됩니다. 보통은 이게 무너지면 우울해하고요.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건 지극히 인간적인 차원의 생각이고요. 우리가 바라봐야 할 점은, 노화로 인해 위축됨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며, 희망을 주고 감동적인 상황에 다다를 수 있음을 성경에서 소개하는데요. 창세기에는 노년의 야곱이 자신의 손주들인 요셉의 아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오고요. 탈출기에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사소한 문제까지 전부 모세에게 물어보기에 과로에 시달리는 그를 안타까워한 나머지 장인 이트로가 조언합니다. 자네뿐만 아니라 자네가 거느린 백성도 아주 지쳐 버리고 말 걸세. 이제 내가 자네에게 충고할 터이니 내 말을 듣게. 자네는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대리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일을 하느님께 가져가게나. 그리고 그들에게 규정들과 지시들을 밝혀주고, 그들이 걸어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게. 유능한 사람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으로 백성 위에 세우게. 이들이 늘 백성을 재판하고, 큰일만 자네에게 가져오도록 하게. 작은 일들은 모두 그들이 재판하도록 하게. 이렇게 그들과 짐을 나누어 져서, 자네 짐을 덜게나.” 비록 그는 하느님을 믿는 이는 아니었지만 사위를 사랑하는 마음에 짐을 덜어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나고픈 어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꼭 본인이 현장을 뛰어야만. 직접 활동해야만 사는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하도록 열어주고, 알려주면서 다른 차원의 맛을 얻게 되는데요. 비록 저는 물리적인 나이는 많지 않지만, 여러 세대들을 만나면서 어떤 어른이 참다운 어른인지를 보게 됩니다.

 오늘 독서를 보십시오. 형제인 롯이 사는 소돔 지역에 하느님이 경고하시자, 아브라함은 애닯고 정성스럽게 하느님께 여쭙습니다. 그곳에 의인이 쉰 명이 있어도 쓸어버리시겠습니까?”로 시작된 말이 점차 마흔 다섯명, 마흔 명, 서른 명.. 이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까지 고합니다. 그도 알았던 겁니다. 올바른 이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는 것뿐이었지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기도를 가르쳐주시며 청하여라, 두드려라 하시며 이제 빌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합니다. 이건 무능력한 것이 아니지요. 내가 주관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고린토2416절 말씀에 나오지요.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육신은 약하지만, 신앙 안에서 서로에게 빛나는 표징이 되어 사랑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해 곁에 있어줘야 함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어른의 모습이겠지요. 그러니 서로에게 관심과 격려를 해주며 모두를 살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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