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2025. 7. 31. 오후 1: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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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한 때 세상을 향해 야심을 키우며 부귀공명을 추구하던 이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것을 염원만 할 뿐, 만나지는 못했고요. 또 누군가는 그것이 주는 해악을 깨닫고 헛된 것을 쫓고 있었음을 알고서 새로운 삶으로 옮아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이냐시오 성인입니다.

 참다운 삶을 살려고 기도방법을 찾던 그는 유명한 영신수련의 방식을 창안하고 이를 전달하고자 원리와 기초라는 원칙을 쓰기에 이릅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사람은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면서 지상에 있는 이를 도와야 한다. 헌데 그런 목적으로 삶을 살려면 방해가 되는 건 제거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사는 삶과 차이를 느껴야 합니다. 나는 나만을 위해 살지 않는가? 아닌 것, 나쁜 것인지 알면서도 정리 못하는 것은 아닐까? 방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 왜 여태 껴안고 나의 삶을 스스로 발목 잡혀 사는 지를 아는가?를 스스로 물어볼 필요를 느낍니다. 우리 중에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그걸 껴안고 사는 가련한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처럼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처럼 먼저 분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두 개의 깃발이란 중요한 기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깃발, 다른 하나는 악마의 깃발입니다. 이걸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박멸하는 시각은 곤란합니다. 가난을 택하면 그리스도이고, 부귀를 택하면 사탄이란 말이 아닙니다. 성령과 악령이 대치하면서 평형과 균형을 잡으며 자유를 누리는 것이어야 하는데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가 있지요. 해독제나 항생제는 무엇으로 만들까요? 독이나 균을 이용합니다. 우리 중에는 고해성사 보는 것을 꺼립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는 게 싫고 부담스럽다는 것이죠. 허나 그걸 인정해야 나의 부족함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를 안 좋은 것이라고만 여기면 하나만 아는 꼴이 됩니다. 다음을 위해서라도 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간다면, 마치 독이나 균을 통해 해독제를 만들 듯 이것은 무조건 버려야 할 것이 아닙니다. 마치 지옥도 하느님이 있기에 지옥이 있는 것이지, 하느님 없는 지옥은 없지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처럼 주님 안에서 이뤄집니다. 무조건 없애고 죽인다고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있는 것에서 활용하여 평온함을 얻으려면 갇힌 시각에 사로잡혀 한쪽을 응징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닌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선과 악. 모두에게 적용되며 더 큰 선함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결핍과 충만함을 다 같이 들여다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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