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성모신심미사. 이사야 9,1-6; 루카 2,15-19
아무래도 현실은 여러분이 주인공은 아닙니다. 주도권도 없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숨 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이런 내가 실망스럽기에, 여건이 원망스럽기에 무엇을 감히 바라기보다 그저 주어진 것만 근근히 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때에 신탁이 내립니다. 신탁(神託)이 뭡니까? 하느님이 사람을 매개로 하여 내리는 예언이죠. 그런데 그 예언의 내용이 뭐가 되었건 의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란 것을 알아차렸을 때, 원함이 이뤄졌을 때는 얼마나 기쁨이 크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예언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약속만 들었습니다. 다행히 시므온은 죽기 전, 구세주를 안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그게 이뤄지지만 그 이전 세대들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약속은 듣지만 정작 만나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목자들과 성모님은 주님의 약속을 두 눈으로 확인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여기에 우린 어떠한가? 바라봅니다. 여전히 무덤덤한 이유가 뭘까요? 여기에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이 기쁘게 복음을 선포한 이유를 살펴보지요. ① 구약성경 말씀이 이뤄졌다. 그래서 말씀으로만 듣던 구세주가 오셨다. ② 사람이 죽는다고 끝나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셨다. ③ 서로 공동체를 이뤄 가난한 사람, 부자가 없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희망을 가집니다. 그럼 요새 신자들에게는 왜 기쁠까요? 먼저 다들 각자 살면서 이제 핸드폰을 쳐다봐도 막상 전화할 상대가 없습니다. 다들 외롭게 되었습니다. 그런 때 교회는 같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이어줍니다. 어려운 이를 돕는 빈첸시오, 레지오 등의 활동으로 여전히 관심을 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가집니다. 게다가 이런 주님의 메시지와 교회의 활동은 2천년간 일관적입니다. 그르침이 없는 신실한 주님의 모습에서 성모님과 많은 이들은 이 메시지에 자신을 맡기며 기쁜 삶이 되어갑니다.
여기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기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부담스럽지 않으려고, 귀찮지 않겠다고, 내 마음에 성벽을 쌓아올렸던 것은 아닐까? 봐야 합니다. 재밌게도 기회와 위기는 같이 찾아옵니다. 언뜻보면 위험해보이지만 자기를 개방할 때 그제서야 보이는 것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니 나를 지키겠다고 너무 막진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메시지는 불현듯 떨어지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