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2025. 8. 4. 오후 11:53:53

글자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만, 우리네 모습은 할 수 있는 것만 하려드는것에 메여있는 모습입니다. 할 수 있는, 가능한 것만, 이른바 안전빵이 무슨 문제냐? 하실 수 있겠지만 그런 자세는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는, 현실안주에 머무는 단계에 빠지는데요.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니까요.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 시대는 이전 프랑스 혁명이 있은 후라 냉담자가 많았고요. 가톨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당시 신분제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3등급의 신분제로 나뉘었는데요. 1신분은 전 국민 0.5% 해당하는 성직자, 수도자 2신분은 전 국민 1.5%에 해당하는 귀족, 3신분은 98% 대다수가 차지하는 평민이었습니다. 여기에 임금, 황제는 계급을 초월한다고 여겼지요. 그런데 98% 해당되는 사람에게서 고혈의 세금을 뽑으니 못 견딘 민중은 봉기를 일으키지요. 여기에 본당신부는 사목하기가 힘들었답니다. 교회재산은 몰수되었고요. 전례생활도 예전같지 않으니 신자들이 미사를 참례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본당에 소임받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동네 유지에게 인사드리러 가야했답니다. 잘 보여야 됐기 때문이지요. 헌데 비안네 신부님은 그러질 않았답니다. 오히려 어려운 신자들을 찾아다니고 기본적인 미사와 성사집전에 충실했답니다. 처음엔 자기들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은 것에 의아했으나 점차 소문이 퍼지면서 리옹교구에까지 알려지면서 큰 인물로 추종을 받습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서민을 이해하지 못한 차원에서 벌어졌지만 교회가 회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독서와 복음에서 현실의 배고픔만을 논하고 있고요. 가능한 것만 하려드는 유혹을 벗어나 더 큰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며 불가능해 보입니까? 아니지요. 우릴 신앙으로 더 큰 너머의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린 기적을 믿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우리를 통해 연결될 때 하느님이 나를 통해 이루어주시는구나라며 기뻐하게 됩니다. 당대에서 다 안 이뤄질 수 있어도 그것으로 끝남이 아니라 우릴 위로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