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목요일
사람 사는 게 가만히 보노라면 ‘패턴의 문제점’이 반복된다는 점을 봅니다. 그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을 못미더워하고요. 학생은 선생을, 시민을 국가를, 교우는 신부를 하급직원은 상사를 신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여기는 나름, 끼리, 또래의 집단을 이뤄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자기 눈높이에서만 보려는 경우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기에 왜 그런 지시를 내리는 지 모르기에 오해하게 되고요. 또는 이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모세를 못미더워하고요. 하느님께 심통을 부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네 방식으로만 보고, 그분의 계획에 태클을 겁니다. 여기에 무엇이 문제일까? 과연 뭔가 제대로 하고픈 마음은 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아니면 괜히 험담하면서 쾌감을 느끼고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여기엔 나름 불편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기대를 가졌던 어른에게서 상처를 받은 경우입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 마음을 닫고, 기대를 끄는 방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누가 와도 그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닫는 방법이 덜 다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2. 부딪히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지인의 말과 경험담을 믿는 편이 내가 직접 확인하여 부담을 느끼는 것보다 낫다고 여깁니다. 지인과 나는 다른 사람인데도 ‘그래! 그 사람이 그렇지?’ 하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선택에서 안심을 합니다. 3. 시간이 걸리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한 사람을 알려면 여러 상황과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몇 가지로 얼른 결론을 내리는 통에, 빠른 답에서 모든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허나 뭔가 믿고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그 물 속에 뛰어들어 젖을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머리로만 판단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읽어도 이미 유대인 방식의 편집된 경전을 읽기에 구세주의 오심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는 괜히 고집을 부리는 편이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묻게 됩니다. ‘나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인가?’ 본인에게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