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일

2025. 8. 23. 오전 9: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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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1주일. 이사 66,18-21. 히브 12,5-13. 루카 13,22-30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비록 부모는 못 배우고, 못 먹더라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제공하려는 본능이 있잖습니까? 여기서 이런 물음이 듭니다. 과연 참된 교육이란 무엇일까? 라고요.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 라고요. 교육은 지금뿐 아니라 먼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잠시 개론 수업 같은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고전인 맹자의 진심편에는 인간이 가지는 3가지 즐거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인데요. 1. 부모가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탈하면서 개인이 살 수 있는, 존재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이고요. 2.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자기 확인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고요. 3.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타인의 대한 배려와 이해를 하는 것이라 합니다. 여기서 교육. 한자 가르칠 교()는 사귈 효(), 때릴 복()자가 들어있어 성숙한 이가 미성숙한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뜻이 있고요. 기를 육()은 사랑과 관심으로 기른다는 뜻입니다. 영어도 비슷합니다. education은 라틴어 eout of 즉 밖으로라는 뜻이고요. ducare는 꺼내다, 이끌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들 뭔가를 이끌고 끄집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교육의 정의는 1. 인간의 존엄성을 배우며 행동이 합리적이길 바라고요. 2. 계획적인 면을 갖고 있어 방향을 설정하고요. 3. 변화의 목적이 있어 본래의 모습에서 거듭나길 바랍니다. 일반적인 설명을 통해 이제 신앙적인 면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교육자의 모습을 갖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의 목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론정립이 아닌, 행동으로 이끄시는데요. 1. 사랑의 원리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같은 인간처럼 사셨습니다. 2. 가능성의 원리입니다. 12제자들이 유능한 이가 아니었지요.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요. 토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헌데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3. 본보기를 보이십니다. 발을 직접 씻어주시고요. 기도는 어떻게 하는 지 알려주십니다. 4. 인격적인 만남으로 아픈 이에게 다가가십니다. 5. 깨달음의 원리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알아서 깨닫게끔 도와주십니다. 그러면서 지혜로운 비결을 알려주시지요. 오늘 복음처럼 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쉬운 길 가는 사람, 타협주의자들은 당장엔 안위를 누릴지 모르지만 오래가지는 못함을 알리십니다.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이들은 오히려 의외의 선택을 하는 이들입니다. 2. 밭의 숨겨진 보물 이야기처럼 하느님 나라는 평범한 밭에 숨겨져 있습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지요. 너무 평범해서 가치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알아보는 이는 가치를 알기에 투자하며 모든 것을 걸지요. 세상도 그러한 데 천상의 가치는 더 크잖습니까? 3. 사랑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겉치레의 형식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근본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여기에 일흔 일곱 번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 어떻게 와닿습니까? 4. 황금률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주길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자기는 싫으면서 남 시키는 것은 오죽 잘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먼저 해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오늘 말씀은 훈육, 교육의 관점을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 있을 것이다에서 세례받았다고 그냥 마음 푹 놓고 있으면 안되고, 계속 기도하고 수양의 필요성을 말씀하고요. 2독서에서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에서 그저 쉬운 것은 없다. 교육의 어원처럼 계획성과 변화 목적을 가지고 임할 때, 우린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1독서의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처럼 요새 자국민만을 챙기려는 시대에서 모두가 하나라는, 엄청나고 당연한 스케일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되려면 어디서 해야할까요? 당연히 사회에서, 학교나 교회에서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가정에서 애정을 갖고, 계속 시키고, 숙달되도록 습관을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은 제일 작은 단위의 공동체이지요. 참다운 신앙교육과 인간 교육은 가정에서 바탕이 이뤄져야 다음 단계에서 크게 키워갈 수 있겠지요. 집에서부터 잘해주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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