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간 목요일
신자들끼리 묻습니다. ‘저 사람은 신심이 좋으니?’ 그런데 신심이 있다, 없다는 무슨 기준으로 말을 할까요? 이미 400년 전 저서인 교회의 스테디 셀러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신심생활 입문’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말을 꺼냅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 기도를 바치는 것이 참된 신심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혀로 가족이나 이웃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타인을 무시하는 교만과 멸시의 언사를 서슴치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신심깊은 사람으로 통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심생활은 경건을 가장한 허상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하느님이 주신 사랑으로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할 때, 은총이라 하고, 그 사랑으로 덕을 행하려 할 때 애덕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애덕으로 일상을 살면서 자주 선을 행할 때 신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신심이 있는 이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신심은 아는 것을 변화시키는 이가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서의 바오로는 콜로새서인들에게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원의 덕분으로 어둠에서 빠져나와 죄의 용서를 받게 됨을 기뻐합니다. 복음의 시몬은 아직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던져 내려라” 는 말씀에 자신들이 예수님보다 더 고기잡이 전문가이면서도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삶이 변화됩니다.
요사이 어설픈 전문가가 많은 실정입니다. 자격증은 있어도 공부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우린 그들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 부족함이 많다’ 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합니다. 세상의 답답함은 세상 자체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일 때가 더 많아 보이는 것을 인정한다면 구원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