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간 금요일
계속 발전을 지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뭘까요? 그렇지 않은 이, 이른바 옛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예전 향수에 머물려 합니다. 일단 편하고요.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발전을 지향하는 이들은 당장엔 어색하고, 불편한 듯 여기지만 예전보다 나아져 있음을 느끼기에 비록 원활하지 않아도 뭔가 계속 움직이곤 합니다.
예수님의 구원방식은 달랐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받아들이기에 어려울만큼 과감했고요. 율법을 어기는 것 같으면서도 그 정신을 뛰어넘었으며, 행동에 의한 실천을 감행하셨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도 놀랄만큼요. 기도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막 서원을 하거나, 푸르푸릇한 첫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요. 지나보니 그땐 참 서툴렀음을 알고, 오히려 지금이 더 원숙하고 매끄럽게 진행됨을 알기에 ‘지금이 더 좋다’ 고 말합니다. 마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듯이,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의 방식은 기존과 다른 것처럼 보였기에 처음에는 정도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세대를 뛰어넘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방식도 그러한 지 묻게 됩니다. 물론 예전 방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겠지만 점차 나아져감을 보면서 기쁘지 아니한가?를 묻게 됩니다. 희생을 통해 모두를 살리신 방식은 시대를 뛰어넘고 있음을 봅니다. 다들 자기시대의 자기만 생각하는 시대를 많은 울림을 주니 말입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말처럼 여러분도 저도 그리 되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