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5. 9. 8. 오후 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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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여러분도 들어보셨던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언론사가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성당을 다니는 이유는 뭔가요?’ 이에 압도적인 1위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2위는 삶의 의미를 얻으려고, 3위는 공동체의 유대감을 얻으려고, 4위는 도덕적 지침을 제공받으려고, 5위는 교회 전례를 통해 구원을 얻기 위하여..였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1위는 뭘까요? 다수가 밀쳐버린 5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얻어야만 도덕적 지침도 가능하고, 공동체의 유대나 삶의 의미, 마음의 평안함도 가능한데요. 게다가 예비자 교리 때도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왜 거꾸로 알아들을까요? 여기에 신부인 저도 반성을 하게 되고요. 신자들 스스로도 바로 세웠어야 할 것을 놓친 것을 반성하는데요.

 오늘 십자가의 죽음 현장이 복음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죠.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런 희생의 필요성을 말씀하시고요. 그것은 독서처럼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협조자인 성모님의 부르심의 행동을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들 빠져나가는 시대에 교회는 늘상 삶을 껴안고 붙잡는 형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피하지 않고 받아들임 속에서 구원이 온다는 것. 마음의 평안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희생자가 나이거나, 내 가족 누구이거나, 이웃 혹은 아예 모르는 사람까지 그런 희생자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왠지 숙연해지지 않습니까? 어떤 것인든 그냥 주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오히려 가짜일 것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순교자의 후예답게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가끔은 내가 바라느 것이 되려면 거꾸로 생각해야 답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야 질서가 잡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구원방식을 통해 그것을 들여다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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