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수요일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했던 것을 반복해보지만 효과가 나지 않고는 합니다.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창작가들은 이렇게 접근한답니다. ‘관점을 바꿔본다’ 고요. 같은 것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때, 우린 판단이 달라지며 새로운 삶으로 살곤 합니다.
사람이 성경말씀을 따라서 왜 회개를 할까요? 예전의 관점에서 한계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는 문제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다가 어떤 이들 중 누군가 수도원이나 승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즐거움의 극단까지 가봤더니 공허감이 밀려왔다는 이야길 들려줍니다. 그럼 은근히 즐기면서 계속 하면 괜찮냐고요? 어떤 분야건 갈 때까지 가봐야 진정한 맛을 알지, 중간에 해보는 정도만 하면 ‘얼치기 수준’ 에 머물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말한 불륜, 더러움, 나쁜 욕망, 탐욕을 그저 글자로만 알았을까요? 그는 직간접으로 경험하며 그것들의 해악을 알았기에 위험을 경고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들으며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모든 상태를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바라볼 때, 제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눈 가까이서 본다고 무조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초점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갖고 있는 것을 움켜쥔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가치있게 활용할 때 같이 사는 공생의 삶을 깨닫게 됩니다. 갖고 있는 것을 사유화시키지 않을 때 그것에 대한 집착이 없을 때, 탐욕은 사라지고요.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뿐한 삶이 되어갑니다. 조금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떼어서 바라본다면 진정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