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목요일

2025. 9. 12. 오후 11: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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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간 목요일

 아이를 키우고, 길러보신 분들은 알지요. 얼마나 그들의 생각이 다양하고요. 살결이 부드럽고, 몸도 유연합니까? 물론 그에 반해 너무 자유로워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도 있겠지만 이런 부드러움은 식물을 키워보신 분들은 압니다. 여린 잎이 부드럽고, 투명하여 비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아가 발생하고요. 자기 색깔이 뚜렷해집니다. 이는 성장하면서 발생되는 것이겠으나 좋았던 것마저 변질되는 우려 또한 발생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핵심인 사랑하라를 거론하기 앞서 그게 가능하려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어린이와 같이 되라 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순수하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 줄 알고요. 열심하려고 애쓰고, 자기를 제대로 갖춰보려고 은총을 구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것은 남고, 나쁜 것은 버리는 단정한 삶이 되어갑니다. 주님의 생각을 읽고 싶습니까? 헌데 너무 어렵게만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은 유연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몸도, 정신도, 영혼도요. 죽어버린, 마비된 부분은 마치 딱딱하고, 굳어있고요.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이유는 뭘까요? 항상 젊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치 물 댄 동산같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샘솟는 그 뭔가를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라는 것은 단순한 계명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뺨을 맞으면 다른 뺨마저 돌려대라는 사랑이 가능하려면 내 가슴이 문드러지는 것을 경험해야 할 때 알게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무엇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느껴야 알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살길 바란다면 그저 막연하게, 낭만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면서 얻는 무언가를 안다면 어릴 때의 사랑과 다른 성인의 사랑의 맛을 알 수 있을텐데요. 그러니 피하지만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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