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25. 9. 20. 오전 9:29:37

글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순교자 성월에 맞이하는 대축일입니다. 순교라는 말은 한자어로 따라 죽을 순()’가르칠 교()가 합친 말입니다. ()이라는 한자는 죽을 사()와 열흘 순()이 결합된 문자인데요, 열흘 안에 따라 죽는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을 위해, 혹은 중요한 사람을 위해 따라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순국(殉國)하셨다고 하고요. 직책에 충실하다가 돌아가신 분을 순직(殉職)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순교(殉敎)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곧 그리스도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을 말합니다. 순교는 라틴어로 마르티리움’(martyrium)이고요. 그리스어 마르튀리온’(μαρτύριον) ‘증거, 증언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220절에는 바오로가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를 지칭하여 당신의 증인(μάρτυρος)스테파노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여기에 이런 질문이 던져집니다. 나는 이 시대에서 증언의 삶을 살고 있는가?’ 라고요. 평소 대단히 쉽게 행할 수 있는 증언의 방법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 전과 식사 후에 십자가를 그으며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걸 못하십니다. 부끄러운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왔지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신앙을 부끄럽게 여기다가, 이거 온전히 내가 다 잃게 생겼는데요.

 왜 선조들이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단순히 마음의 평안함 따위를 바란 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사실 한국 천주교는 우연처럼 시작되었고요. 의도치 않았지만 그건 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시대에는 붕당정치가 만연했고요. 선조 임금 시절, 이미 퇴계 이황으로 뭉친 동인과 율곡 이이로 뭉친 서인으로 나뉘었고요.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나뉩니다. 여기에 남인 계열의 유성룡은 왜구가 간간이 침략하던 것을 화의정책으로 달래자는 외교정책을 펴지만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통에, 선조는 유성룡 보고 수습을 시키고 화의를 주장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 그들의 관직길을 막아버립니다, 이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벼슬길이 막혔는데요 그들은 공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란 말처럼 그들은 유학의 한계를 깨닫고 과거공부보다 다른 학문을 추구합니다. 그러다 당시 선진국인 청나라에서 많은 서적을 입수하여 읽던중 거기 휩쓸려 들어온 천주학이란 책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학문으로 받아들였지만 그것이 종교이며, 하느님 아래 모든 백성은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과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주는 박애주의 사상에 매료됩니다. 당시있던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요. 더 이상 유교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파악하던 그들에게, 천주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알고 마음의 불을 지핍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강학회를 열어 양반과 중인이 한데 모여 신앙 세미나를 열었고요.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서 돌아와 동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주면서, 오늘의 교회가 시작됩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처음에는 단순하게 살기 위해 시작했지만 점차 공적인 마음이 되어갑니다. 이것은 박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1827년 정해박해 때 신태보라는 이의 옥중수기를 잠시 소개합니다. 박해가 마침내 가라앉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서로 뿔뿔이 헤어져 있었고, 모든 기도문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떻게 신자 본분을 지킬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우연히 몇몇 순교자 집안의 유족들이 용인(龍仁) 지방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서 몇 권과 복음성경 해설서를 가지고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깊숙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 책을 보자고 청하자, 내 말을 막고 가만히 있으라고 손을 내저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40(16km) 되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8일이나 10일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다. 오래지 않아 우린 한 집안 식구나 다름없이 서로 깊고 진실한 정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고, 주일(主日)과 축일(祝日)의 의무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문모 신부님에게 성사를 받았던 이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2독서에 나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로 시작하다가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 끝맺습니다. 요새 아이들에게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38.6%가 돈, 성적향상, 자격증의 물질적 가치라고 대답합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과 격려인 외적동기가 전부라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내적동기도 있지요. 자신이 진심으로 필요성을 느끼고 행하는 동기부여인데요. 하지만 부모가 성적 올리면 레고 사줄게 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은 거기에 중독되어 보상 없이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냥 하는 게 없어지고요. 공적인 마음도 없어집니다. 얼마나 빡빡합니까? 신앙의 선조들은 더 나은 세상을 얻고자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만났던 박해는, 희생을 통해야 미래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요. 그들은 그걸 알면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랬기에 우리가 여기 모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나야 하는 진정한 가치란 뭘까요? 이게 부끄러운 일일까요? 자랑스럽게 증언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