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목요일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발견합니다. ‘나는 줄곧 예수님 이야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주고,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늘어난다’ 는 사실입니다. 그로인해 제 삶은 기쁨으로 차오릅니다. ‘나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는데도 세상은 그런 나를 칭찬한다’에서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오늘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당시 유배를 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은 다들 자기 살기에 바쁜 처지였습니다. 고향에 오니 황폐해진 땅에 주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였지만 반응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죄지 않았다” 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것을 챙기는 데는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예언이 내립니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 살 때냐?” 과거 흙으로 된 집에서 살 때, 판벽의 집은 널빤지로 지은 집이지만 요즘으로 따지면 대리석으로 지은 집처럼 화려한 집을 말합니다.
1900년에 태어나 한국순교복자회, 수녀회를 세운 방유룡 신부님이 있습니다. 요새 시복성인으로 추대하여 장애없음의 판단을 받고 시도중이지요. 태어나신 때가 그랬기에 한문으로 수도회 영성체계를 세웁니다. 그중 정신이 면형무아(麵形無我)입니다. 성체는 밀 제병의 모습이 사라지고, 온전히 예수님의 몸만 있듯이 자신의 인간적인 본성을 없앨 때, 온전히 주님과 일치한다는 영성입니다. 마치 씨가 죽어야 꽃이 비로소 피고, 열매를 맺는데 우린 나라는 씨를 안죽이려고 애쓰다보니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인생의 참맛도 참된 주님도 못 만나고 말이지요. 헤로데는 말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렇게 계속 죽인다 한들, 제2, 제3의 요한은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버려야 진정한 것을 얻음을 아는 이들은 여지없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외부에 의해 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실직, 부상, 상처, 등으로요. 그러나 내가 스스로 나를 내어놓고 내려놓는다면 우린 값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칭찬하는 삶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