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일

2025. 10. 3. 오후 9: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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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7주일

 이런 말이 어떻게 와닿습니까? 종교인은 있지만 신앙인은 찾기 힘들다 그럼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가 뭔지를 봐야겠지요. 다들 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면 종교인은 맞습니다. ‘제도적 측면, 틀의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좀 다르게 말합니다.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으로 놓고 사는 이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껄끄러움과 불편함이 시작됩니다. 왜 그런 걸 구분하느냐?부터 시작하여 그게 뭐가 중요하냐?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들은 부탁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들이 왜 그런 부탁을 할까요? 그들에겐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비슷합니다. 모든 것을 현상이나 이즘으로 받아들이면 잠시 필요에 따라 붙잡고 살지 모르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갈아탈 것입니다. 이미 내 이득에 따라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여기서 잠시 우리가 하던 것에서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니까요. 여러분은 뭔가 거룩하고 신성한 뭔가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부족하고 허한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길 바라기 때문에 오신 것 아닙니까?

 자~ 잠시 이런 질문을 드려보지요. 여러분이 갤러리에 갔습니다. 공연장에 갔습니다. 미술품을 관람하려면, 음악을 감상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나를 가만히 나둬야 합니다. 여태껏 그런 그림은, 그런 사운드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새로운 뭔가가 내 앞에 당도했습니다. 처음 만난 것입니다. 일단 바라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생각을 비워야 합니다. 이게 신비요, 성스러움을 대하는 첫 자세입니다. 당연히 이를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고요. 해석하고 알아들을려면 나름 갖춘 주변 지식도 발휘해야 합니다. 그저 본다고, 듣는다고 헤아리지 못합니다. 예술가는 내가 짐작할 수도 없는, 많은 것을 숨겨뒀기 때문이죠. 그냥 보고 들어도 좋겠지만 미술 작품에서 몇 색깔을 썼는지, 음악에서 몇 개의 코드로 만들었는지 당장에는 모릅니다. 자세히 보면서 그림의 구도와 붓의 터치는 어떻게 했는지의 세밀함을 살필 수 있고요. 악기가 어떤 방식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지 알면 더 재미있습니다. 그걸 알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일단 보거나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전문가가 말해준들, 내 눈에, 내 귀에 그것이 느껴질 때, 나는 더 잘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바오로가 말했지요. 로마서 10장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독일어의 믿다의 어원에는 좋음, 선함이란 뜻이 있답니다. ‘지혜에 따르면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함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하고요. 요한복음 11장에도 인간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영광을 본다 는표현이 나옵니다. 그리스어에는 신(theos)바라보다, 보게하다란 뜻이 있어 바라봄으로써 신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인간의 용모의 아름다움에서,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에서 신의 영광을 느낄 수 있다고요. 그 아름다움은 하느님을 믿건, 아니건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런 체험은 우릴 움직입니다. 어떻게요? 무한한 것에 열려 있어야 참답게 만날 수 있다 는 명제입니다. 우린 늘 새로운 것을 만날 것입니다. 예전과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하물며 알던 음악도 좋은 오디오로 바꾸면 안 들리던 파트가 들리고요. 여기에 악기를 연주까지 해보면 박자가 어떤 음표였는지 그제서야 파악됩니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귀가 열리기에, 어릴 때는 몰랐던 것을 성장하며 알아듣습니다. 그만큼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한한 것에 대하여 열려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나보다 큰 존재에 대해 바로 알아듣는 게 가능할까요? 선입견, 식견의 짧음, 경험치가 발목을 잡는데도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창주주요, 나는 그에 따른 피조물입니다.’ 여기서 출발할 때 교만하지 않은 시작이 됩니다. 당연히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겸손이 동반되고요. 나의 눈이, 나의 귀가 열리길 기도하면서 이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지식과 체험과 경험이 쌓이면서, 옛 선현들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동감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보이지 않던, 들리지 않던 것이 열릴텐데요. 잘 기다리며 만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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