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축일
며칠 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만 여기서 우리와 성인들의 차이와 공통점은 뭘까요? 그건 바로 관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자신을 구하고, 세상의 평안함을 찾아야 함을 설파하는데요, 세상이 험난하고 불안한데 자신의 가진 재물과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자신을 포함해 다수가 자기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는 데 남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자기만 보면 답이 안 나오는데요.
사실 다들 자기 집, 자기 아이 걱정을 하지만 저는 살아오면서 고마워할 분은 옆집 아주머니였습니다. 남의 집 아이들은 다 괜찮습니다. 어디 남의 집 자식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옆집 애 성적이 안 좋아서 걱정이다. 잠이 안 온다..’ 이런 분들 있습니까? 없습니다. 옆집 애들은 다 괜찮습니다. 문제는 우리집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 저의 자존감을 키워준 분은 옆집에 사는 형식이 어머니였습니다. 그분은 키 작은 저에게 말합니다. ‘아이고.. 키도 그만하면 됐다..’ ‘공부는 잘하나?’ ‘요새 성적이 안 나옵니다’.. ‘그래 못해도 된다. 건강만 해라.. 근데 건강은 괘안나? 무릎이 아픕니다. 괘안타~ 성장통이다. 안 부러지면 된다..’ 그래서 전 지금도 무릎이 아프면 성장통인 줄 압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틀린 말입니다. 아프면 이미 중년입니다. 운동을 하면 해서 아프고요. 안하면 안해서 아픕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지도 못하고 안하지도 못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게 뭘까요?
약간 거리를 떨어뜨려 놓고 바라볼 때, 진정한 사랑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자기 것만 보면 답답하게도 답이 안 나옵니다. 예전 저의 자존감을 키워준 형식이 어머니처럼 예전 성인들도 조금 시선을 높이 들어 주님을 바라본 모양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이 돌이십니다.” 라는 말씀처럼 그분을 통해 삶의 기초를 이루면서 간다면 불안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순교를 하신 시몬과 유다 뿐 아니라 열 두 사도를 포함해 수 많은 성인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요. 너무 자신만 보지 마십시오. 옆의 사람을 봐주는 그런 넓은 마음으로 본다면 괘안타~ 라면서 서로를 격려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