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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린 ‘선물’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물이란, ‘정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해소해주는 사람’ ‘뭔가 확 이끌고 가주는 사람’ 등을 만날 때입니다. 그야말로 마음은 굴뚝 같은데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을 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모두가 좋아라 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이득과 반대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지 않습니까?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의 상황이 이리되고 있을까요? 당시 상황은 고발하고, 비판하고, 진단하고, 하느님 나라라는 참다운 길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이, 신분, 지위, 민족, 인종, 재산에 상관없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말이지요. 복음에도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하셨지만 그걸 원치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사람들이 기회를 못 알아볼까요? 미국의 처세술가인 1883년에 태어난 나폴레옹 힐은 말합니다. ‘기회는 때로 패배나 불운의 형태로 가장하여 등장한다. 이는 기회의 속임수 중 하나이다. 당장 반짝이게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못 알아봐서 그러하다’ 요새 한국시리즈를 하는 야구시즌이죠. 홈런을 많이 쳤다는 미국의 강타자 베이브 루스는 통산 714개 홈런을 칠 동안 삼진은 2배가 되는 1330개나 되었답니다. 이승엽 선수도 15경기 연속 삼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배팅을 하는 폼이 일반 선수와 다르기에 홈런을 많이 치지만 반면 그런 기회는 리스크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기 부담스러워 하지요. 예수님의 구원방식이 모두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결국 모두를 구하셨던 것처럼요. 그래서 예수님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하셨지요.
스스로 복을 걷어차지 않도록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독서에 나오듯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처럼 식견이 부족한 우리 자신부터 훈련시켜 나갈 때, 선물같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