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라겠지만 그건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됩니다. 평소 친하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끝을 맺는 경우도 있고요. 반대로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었으나 내가 모르게 해왔던 좋은 행실이 드러나면서 다르게 평가받는 때도 있습니다. 예전 어떤 대통령도 그러했잖습니까? 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명령을 내렸음에도 그가 대중 앞에서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그냥 세상을 등진 경우도 보면서 무엇이 느껴지시는지요? 결국 살아있을 때 혹은 죽음을 앞두고서 결정을 잘 내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독서에 엘아자르라는 율법학자가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시리아인들에게 침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신을 섬기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이에 그는 말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려 내가 취한 행동을 보고 그들은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겐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라며 이교신 숭배를 거부합니다. 복음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늘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124위 복자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벌써 10년 전이 지났지만 시복식 때를 기억합니다. 천주교를 박해하던 임금의 정점의 자리 경복궁 앞에서 시복식 미사를 드렸습니다. 일부러 말이지요. 그 당시 정부는 넓은 ‘성남 비행장’ 자리를 권했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광화문 앞에서 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기리고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삶을 보면서 우리도 가슴 뜨겁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