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금요일

2024. 5. 9. 오후 10: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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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6주간 금요일

 요새 읽는 복음 말씀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좀 어렵습니까? 요한 복음이 좀 낯선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을까요? 잠시 주의를 유교 사상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왜 유교냐? 하실지 모르지만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신학교에서도 유교 사상에 대해 꽤 배웁니다. 게다가 제가 있던 때에 학장 신부님이 중국에서 유학을 공부한 분이라서 도서관에 책을 많이 갖다 놨던데요. 유교 중에서 공자와 맹자와는 다르게 사람들 관심과 좀 먼 것을 가르친 노장 사상은 생긴 연유가 있습니다. 절대 하늘을 믿던 주 나라가 무너지면서 춘추전국시대가 됩니다. 곳곳에서 능력자가 배출되며 혼란한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절대적 가치 기준이 붕괴되면서 상대주의가 급부상합니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노장 사상이었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인간 위주의 사고 방식인 인문주의가 오히려 인간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말하면서, 도란 인간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보면서 그 도는 인간의 마음에 있으며, 우주 만물을 만들고 만물을 구원하는 존재이고, 무한하다는 점에서 우리 가톨릭의 절대자 하느님과 공통점이 보이는데요.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이 인격적인 하느님이라면, 그들의 하늘은 인격성이 없습니다. 다만 현대적 절대가치가 흔들렸을 때, 노장사상이 나왔다는 점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도 지금의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 참된 정신을 찾아야 하는데요. 한편 요한복음도 예수님 이후 공관복음과는 다른 메시지에서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 오셨다는 사실 부각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이신가?’ 라는 질문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심을 헤아리면서 평소 우리가 소홀히 여긴 면을 보려 했는데요. 과연 우린 무엇을 봐야 할까요?

 독서에 바오로의 주장에 아카이아 지방총독 갈리오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라며 관심 없어 합니다. 그랬기에 자유를 얻은 그는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지요. 복음의 예수님도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라며 현실의 노예 생활을 청산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린 압니다. 가끔은 다른 방향에서 진리가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을요. 매번 보던 시각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살피는 시도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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