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24. 5. 2. 오후 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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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뭔가를 배우면서 드는 것은 의심입니다. ‘왜 이렇게 하지? 다르게 하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인정해야 할 점은 내가 배우는 학생의 처지와 같음을 아는 것입니다. 학생은 스승이 말하는 것을 듣고 흡수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학문과 신앙을 다져온 신학은 역사성을 지닙니다. 2천년의 역사 동안 생각보다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꽤나 많았다는 사실을 먼저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예수님이 하느님과 똑같지는 않지 않은가? 결국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이 아닌가?’ 하는 주장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탁월하긴 하지만 하느님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며 성경에 쓰인 하느님의 아들 은 그저 문학적인 표현방식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타나시오 주교님이 싸웠던 이유입니다. 그들은 아리우스의 주장에 손을 든 이들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라는 말씀에 유다인들이 발끈한 이유를 나름 이유를 대며 주장을 편 것입니다. 이를 여러분은 어찌 여기십니까?

 신학의 역사는 곧 이단과의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올바른 것과 혹시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충돌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학교에도 만날 수 있는 실정입니다. 학생이 학교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성적만 올리면 되기에 오히려 학원 선생에게 더 의지하면 무슨 문제에 빠질까요? 인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회주의자가 되고요. 계산적이 되며, 진리의 추구보다 요령과 이득의 추구에 더 손을 붙잡게 됩니다. 결국 우린 마스터에게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마스터란 누구일까요? 주님과 사도들의 후예를 통해서지요. 성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펼쳐진 성령의 활동을 현실에서 살피는 일입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계명에 머무는 것 은 합리적인 의심을 넘는 진리 추구에 있습니다. 관습보다 진리를 통한 신념에 움직이고 그 신념은 삶의 목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럴 듯한 것들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먼저 내 생각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역사적으로 많았다면 그게 전부요, 진리는 아닐 수 있음도 보면서 살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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