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일. 성소주일

2024. 4. 20. 오전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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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4주일. 성소주일

 오늘은 부활 4주일이면서 성소주일입니다.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풀이하지요. 철학자이면서 독실한 신앙인인 키에르케고르. 예전엔 이름을 그렇게 불렀지만 요사이 덴마크어로 번역 확정되어 바뀐 키르케고르의 시가 있습니다.

 

나의 기도가 좀 더 마음을 모으고 내면을 향하게 될 때

나는 점점 말수가 적어진다.

마침내 나는 완전히 침묵하고 듣기 시작한다.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처음에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나는, 기도가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임을 배웠다.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침묵하는 과정이며

나아가 침묵 속에 들어가

마침내 하느님이 나의 말을 들을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는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 들려온 말씀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인간의 행위 중 가장 고귀한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모여온 우리도 고귀한 행동을 하는 셈인데요.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신앙인이라도 당신께 귀를 기울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인정할 것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주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평상시 신앙인끼리 모여도 복음 이야기나 하느님께 다가가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살펴봐야 합니다. 다수 사람의 관심과 우리들의 관심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이죠. 대다수 사람들은 외부의 세상, 만들어진 물질에 관심이 많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적응하고 활용할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우린 좀 다릅니다. 내면에 관심이 있습니다. 내면의 나의 방 상태가 어떤지, 그것을 만드신 분이 나를 어떻게 부르시는지에 관심이 가 있습니다. () 안동 교구장님이셨던 두봉 주교님이 피정 중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린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이들은 현실에 메여있길 바라는 자발적인 노예 상태입니다. 우린 그들과 다르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1독서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차 말하였다.” 그 목소리는 나를 더 나은 쪽으로 움직여 줍니다. 비록 다수가 바라는 판단이 아니기에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했지만, 이는 따돌림을 받은 게 아니라, 대다수가 무관심한 것들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관심의 포커스가 다른 이들은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의 계산보다는 더 나은 것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우릴 어리석게 보기도 하고요.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린 이렇듯 관심이 다릅니다. 물론 우리도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인들이 현실을 더 사랑하고 현실을 주는 것에 안주하는 반면, 우린 참다운 것, 변치않는 불멸한 것,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을 삽니다. 이런 이들은 당장 손해를 보거나, 힘들어도 거기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오늘 복음에 잘 나옵니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그분의 관심은 온통 인간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고 우리가 참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독서에서도 이런 말씀이 나왔잖습니까?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데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부르심이라는 릴레이 바톤은 그동안 수 많은 성인들을 거쳐 나에게 건네집니다. 여기에 주님은 여러분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어느 쪽으로 이끄십니까? 그리고 무어라 응답하시겠습니까? 문득 느껴지는 두려움과 부담감마저도 당신께 내어 맡길 때, 우리의 삶은 당신으로 인해 축복받고 있음을, 그분의 덕분으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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