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성모신심미사. 사도 1,12-14; 요한 19,23-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독서에 보면 제자들과 어머님인 성모님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황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랍니다. 그들을 봤던 거죠. 그분의 부활을, 그리고 죽음의 승리를요. 십자가라는 희생의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일을 만날 수 있음에 대해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던 겁니다. 자연스레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라고 서술됩니다. 체험했기 때문이지요.
성모님의 입장에서 천사의 음성과 주님의 부름속에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구세주를 낳았고요. 현실의 기구한 운명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을 따르는 인파의 물결에 미소가 나올 법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 아들은 죽었고 이내 부활하면서 하늘에 오름을 보면서 과연 무슨 심정이 들었을까요?
운칠기삼(運七技三) 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의 성패는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다.’ 는 뜻으로 모든 일에 운이 70%, 재주는 30% 라는 뜻이랍니다. 열심히 사는 이에겐 좀 억울한 고사성어이겠지만 실제 삶이 그렇습니다. 세상을 내가 만들지 않았기에 내 마음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갑작스레 주어지는 것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곤 합니다. 누군가 지나가다 건네는 한마디 ‘이거 한 번 해보실래요?’ 라는 권유가 진로를 바꾸게 하고요. 직장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진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봅니다. 인간 이상의 것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인간 이하의 것들을 하는 이들도 있지요.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서 나는 무엇을, 얼마나 만나고 있습니까? 어쩌면 사소한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게 해줬는 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 혹시 뭔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과 뭔지 모를 확신에서 시작이 되었지요. 그리고 그것을 만난 이들은 이제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삶이 달라졌기 때문이지요. 여러분도 그러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