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나해

2024. 3. 30. 오전 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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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나해

 서로 부활 인사 나누겠습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보통 우리네 인사는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한자어로는 편안할 안(), 편안할 녕()입니다. 삶이 편안하냐? 별 탈이 없느냐? 의 뜻이 담겨있는 안부인사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네 삶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매번 터지는 사건, 사고가 힘겹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자연과 인간의 차이를 보겠습니다. 자연은 항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오염이 생기면 시간은 걸리지만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면서 화학적 변화를 거쳐 예전처럼 돌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복원되는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체제가 있고, 규칙이 있고, 내부적으로 두려움과 부담감, 고집이라는 것들이 다시금 돌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분명 안녕하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안녕에 다다르기 어려운 현실을 만나곤 합니다. 여기에 무엇이 필요할까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러셀의 제자인 그는 책은 몇 권 쓰지 않았지만 천재라 불리운 이였습니다. 그러면서 삶은 검소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지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오늘처럼 부활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쉽게 말할 수 없는 차원을 만나고 있습니다. 일단 부활은 자연적인 인간의 것을 뛰어넘는 문제이기에, 실험하고 증명할 수 없고요. 게다가 당시 살아있던 증인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의 증언이 구전과 이를 서술한 성경이란 책으로 만났을 뿐입니다. 이런 현실이기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따르면 저는 부활 강론을 하면 안됩니다. 말할 수 없는 차원이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은 요사이 유행하는 입틀막처럼 단순히 입을 닫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를 뛰어넘은 문제에 관해 고집을 피우며 가벼이 논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문제를 종교적 관점에서 보지 않을 수 없다 고요. 이 말을 뒤집으면 모든 문제는 무종교적 관점에서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 무종교적 관점이 뭘까요? 보통 사람들이 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세상 사는 것 별 거 있나? 인생 뭐 있어?’ 라는 허무주의, 냉소주의, 비관주의, 염세주의 등의 관점입니다. 여기에만 빠진 이에게 세상이란 살아갈수록 고통일 뿐입니다. 여기에만 빠져있다면 나는 나를 구제할 수 없습니다. 그럴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구해줘야 합니다. 마치 심폐소생술을 혼자 해서 살아날 수 없듯이요 그걸 주님이 해주셨습니다

 종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살 때, 나는 현실에 매인 종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요. 주님의 부활로 내 삶을 일으키신 힘을 만납니다. 그러니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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