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4. 3. 23. 오전 9: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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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요사이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지?’ 일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습니다. 명분과 원칙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소명을 가진 나에게도, 잘 모르는 타인에게도 모범과 가르침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나 자신한테도 기쁨이 되었습니다. 헌데 요사이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게 나에게, 가족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데?’ 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선거에서 후보자에게 표를 찍어주는 이유가 그런 거구요. 물건을 살 때도 그렇습니다. 당연히 지금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무엇을 놓칠 수 있을까요? 정작 내가 챙겼어야 할 부분을 놓칩니다. 마치 입에는 달콤해서 즐겨 먹었지만, 몸에는 나빴기에 결국 건강을 잃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교회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성주간은 어떨까요?

 오늘 여러분은 1년 중 제일 중요한 주간을 지내게 됩니다. 헌데 실제 심정은 이러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중요시한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2천년 전의 사건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 오래됐지요. 옛날 일입니다. 하지만 그전과 지금의 공통점이 있지요. 그건 여전히 사람이 죽는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이건 여러분의 얘기입니다. 그렇게만 죽는다면 이 현실은 살아갈수록 암담할 뿐이고요. 당연히 내게 못해준 부모님에게 서운하고, 안 풀리는 삶이 억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들 뭐가 달라질까요? 여기에 예수님이란 분은 화해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 화해는 먼저 현실과 나 자신과의 화해구요. 사람이 조정할 수 없는 범위의 화해까지 포함됩니다. 만약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 나를 잡아가고 고문을 하면 어떨까요? 억울하지요?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내 자식이라면요? 내 자녀가 모르고서 온갖 것을 저질렀다면 이때 부모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상대가 인간의 법 기준을 웃도는 목숨을 관장하는 분이라면 소송도 소용없습니다. 굴욕감이 들더라도, 자존심이 밟히더라도, 무릎을 꿇고 빌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내어놓으십니다. 자녀는 무지했고 당신은 우릴 만드셨으니요. 그런 사랑이 한계에 놓인 우리의 숨통을 틔우십니다. 그렇다면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의 범위를 넘는 차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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