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수요일
예전 평화방송 DJ를 할 무렵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는데요. 밖에서 초대 가수 한 명이 부스에 들어오기 전에 푸념을 늘어놓았답니다. 내용인즉슨, ‘내가 신부님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 였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신자도 아닌데, 가수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음반홍보차 회사가 시켜서 오긴 왔지만 음악도 모르게 생긴 신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가? 하는 강한 불만이었답니다. 그러다가 나를 쓰윽보고 안심을 좀 했더랍니다. 당시 제 헤어스타일이 머리카라기 등까지 내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천주교는 보수적이고, 지킬 것을 지키느라 타협이 쉽게 통하지 않는 불통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물론 꽉 막혀보이는 스타일의 고수가 교회를 여기까지 이끌게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좀 살펴보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꽤나 진보적이고, 목소릴 내며 어떤 부분은 과감하기까지 합니다. 남들이 잘 하려들지 않는 영역을 건드리며 말이지요. 구약의 주님과 신약의 주님이 다른 것 같아 언뜻 헷갈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율법학자들마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허나 당신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어기지 않으셨다. 폐기가 아닌 완성”임을 말씀합니다. 구분하고 정돈짓는 방식은 언뜻 이해하기 쉽지만 모든 것을 담아내고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자기 틀에 가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범위를 넘나들며 무언가를 합니다.
제가 머리를 길렀던 것은 백혈병, 소아암 환자에게 모발 기부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염색, 파마를 안 하고 3년 정도를 길러야 했습니다.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온갖 손가락질에 입에 오르내리는 소릴 했습니다. 사람이나 가르침은 무릇 ‘과정’ 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오히려 어리석은 일입니다. 혹시 우리도 한 사람을, 주님을, 어떤 사업을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