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수요일
여러분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으신가요? 제겐 이런 성향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방법은 모릅니다. 하지만 실패하는 방법은 압니다. 그렇다면 실패하는 방법을 잘 파악하면 비록 성공은 못해도 중간은 갈 수 있겠지요? 그럼 사람들이 왜 실패하는 지를 안다면, 설사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독서에 사람들을 보면 “자, 예레미아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면서 꼭 예레미아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으니 그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른바 자기네 취향과 맞지 않으니 사람을 못 알아봅니다. 복음에도 보면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요. 예수님을 자기식대로 알아보는 그들을 보며 무엇이 보이시는지요?
예전 성가대원이었던 분이 이야기를 해오다가 그전 지휘자가 실력이 없었다는 투로 말을 해옵니다. 처음엔 그 사람도 전공자일텐데 여기며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들었지만 같이 뭔가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자체가 실력이 없었다는 것을요. 박자 관념이나 다른 여러 가지가 많이 부족했는데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학생은 자기 눈이 뜨였을 때 그제서야 선생을 알아보는 법이다’ 고요. 자기식대로만 보려는 이는 상대방의 진가를 몰라서 오해하거나 이야기를 들어도 흘려듣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아는 이들은, 그것을 짚어주는 사람의 의도와 관점을 알아듣기에 그냥 놓치지 않습니다. 잡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지요. 어쩌면 우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었습니다. 그 사람의 실력이 없다고 단정지었고요.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이해력이나 지식, 헤아림이 없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저 상대를 탓했지요.
살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다들 자기식대로 알아듣기에 가르침과는 다른 삶을 삽니다. 마치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는 예수님의 삶의 의도를 모르기에 그저 남이 앉은 자리를 탐한 것처럼요. 역사상 수 많은 이들이 실패를 해왔습니다. 이제 거꾸로 알아들어야겠습니다. 참된 성공을 위해서 말이지요. 그 성공은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