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금요일
요사이 따스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왠지 모두들 쫓기는 듯한 모습들입니다. 게다가 가족에게 화가 나 있고요. 직장 사람들도 부담스럽고 같은 교인끼리도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누가 뭔가 건드리거나, 내 영역을 침범하는 느낌이 들면 소리를 지르고, 응징을 가하려 듭니다. 무엇이 우릴 분노하게 만들고, 화나게 할까요?
복음에 보면 형제끼리 ‘바보, 멍청이’ 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애를 키울 때, 첫째가 생기고, 둘째가 생기면 아이들은 그때부터 형이 긴장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예전같지 않고, 그 사랑을 빼앗긴 느낌에 동생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지요. 갑작스레 상황이 달라졌기에 어린 형은 자기를 지키려고 드는데요. 하지만 그래야만 직성이 풀릴까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있었음을 소개할까 합니다.
기원은 1884년 스코트랜드 제임스 웰스의 저서까지 올라갑니다. 그 책에 감명받은 에드워드 플래니건 신부님은 1921년 보이즈 타운(boys town)을 설립하여 소년들의 고아원을 짓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이따 들을 노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 라는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불편해 교정기를 착용한 동생을 업고 있던 형에게 ‘무겁지 않느냐?’ 는 질문을 던지자, 형은 답합니다. ‘아니요 무겁지 않아요. 얘는 내 동생이거든요’ 여기에 저자는 그 아이에게서 마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을 보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진처럼 (화면을 보여주며) 미국 오마하에 동상이 설치되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이 사연은 1938년 영화로도 만들졌고요. 1969년 그룹 홀리스가 불러 차트에 인기를 끌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감동을 주게 됩니다. ‘내 동생이기에 무겁지 않다’ 는 내용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우리에게도 가족이 있고, 동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무 이유 없어요. 동생이니까 업은 것’ 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현재 우리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반성하게 만듭니다. 가사 내용에 ‘우리가 그곳에 가는 동안 나누지 못할 것이 없어요. 그는 짐이 아니에요. 내 동생이에요’ 노래 들으시면서 내가 가진 사랑과 견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