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월요일

2024. 2. 26. 오전 12: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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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주간 월요일. 다니엘 9,4-10; 루카 6,36-38

 요새 서점에 가면 인기있는 철학자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쇼펜하우어입니다. 1788년에 태어난 그는 당대 유명한 헤겔 등 학자와는 반대로 인기 없던 비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바그너, 모파상. 톨스토이, 니체 등이죠. 그가 살던 19세기에는 대접받지 못한 그가, 요새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이 힘들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는 비관의 철학자였습니다. 고통을 삶의 본질로 여겼고요. 그는 인간을 움직이는 근원적 동력을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지, 즉 들끓는 욕망이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벗어나지 못할 이 욕망이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다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면 이를 얻으려 갈망의 고통에 빠지고 충족을 얻으면 무료해 권태의 고통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이 고통없이 살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픈 사람이, 저는 절대 화장실은 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음식을 먹는 쾌락을 누리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다시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화장실을 가야 한다. 고통 없이 쾌락만 얻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인간들은 고통을 피하려고 든다 이런 말을 했던 이유는 그가 17살 무렵,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참혹한 현실과 노예선에 실린 노예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며 눈을 떴기 때문인데요.

 복음과 독서에서도 비참한 우리들의 현실을 봅니다. 마음을 착하게 먹어보지만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심판하고, 단죄합니다. 그러면서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부끄러움이 가득합니다. 주님이 주신 삶과 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 삶을 사는 이들이 그걸 보여줍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자신을 휘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헤어나오려는 사람보다, 거기에 안주하고, 만족하고, 더 갈구하는 이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하지요. 나는 욕심이 없다’, ‘나는 주님처럼 가난한 삶을 바란다 하지만 이 안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비참함에 빠지고 싶진 않다.’ 욕심과 가난의 정체도 모르면서 동경을 합니다. 우린 내가 무엇에 휘감겨 있는 지 봐야 하는데요. 그러질 못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도덕 교과서처럼 보일 것입니다. 본인이 정답만을 외우고 되풀이하는 앵무새인데 마치 그걸 체험하면서 말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데요. 이제 무엇을 봐야 할지 명확해집니다. 그건 바로, 나의 현상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더럽고 추잡해 보여도 그것을 인정할 때, 나는 주님께 손을 벌리며 구해 달라고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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