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일 나해.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일단 생각부터 하면 골치가 지끈거리고요. 그날이 안 오거나 나중이길 바라고요. 그걸 해야 한다면 쉬우면 좋겠습니다. 뭘까요?’ 그렇습니다. 답은 시험입니다. 오늘 독서의 아브라함은 하느님에게서 시험을 받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을 제사 제물로 바치랍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사람을 공양으로 바치랍니다. 현대 관점에서 말이 안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일 치사한 것이 줬다가 뺏는 것인데, 아들을 주겠다고 그전부터 말씀하셨던 분이, 이제는 내가 줬으니까 내놓으랍니다. 이런 어이없고, 억울하고, 황당한 경우에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내놓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최근에 시험을 치신 적이 있습니까? 예전 어릴 때 시험과, 어른이 되서의 시험 양상은 좀 다릅니다. 어릴 때는 시킨 것만 잘하면 됐습니다. 가르쳐준 것 열심히 외워서 쓰면 됩니다. 간혹 남의 것을 베껴 써도 안 걸리면 다행입니다. 높은 점수 받고 좋은 등급 받으면 통과이니, 그걸로 만족이 됩니다. 헌데 어른이 되면 시험 단계가 달라집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오고요. 옆의 사람과 다른 것을 물어옵니다. 게다가 현실 상황에서 대처해야 하니, 이건 답도 잘 안 보입니다. 게다가 그게 시험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시험을 어찌 감당하십니까?
예전에도 이런 양상의 시험은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밑의 사람을 쓸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시험을 치면 그 사람의 자연스런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위적인, 꾸며진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죠.그래서 불현듯, 갑작스레 시험을 치루게 만듭니다. 제갈량의 저서 <장원(將苑)>의 지인성(知人性)편에 보면,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1. 시비를 물어 그의 뜻을 관찰한다. 2. 언변으로 몰아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핀다. 3. 계책을 물어 그의 지식을 관찰한다. 4. 재난이 닥쳤음을 알려 그의 용기를 관찰한다. 5. 술에 취하게 해 그의 본성을 관찰한다. 6. 재물로 유혹해 그의 청렴함을 관찰한다. 7. 일의 기한을 두어 그의 신용도를 관찰한다... 왜 이렇게 할까요? 갑작스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이런 시도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 대다수가 모르는 이들입니다. 모르는 사람과 일을 같이 하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 살피는 일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모르면서 뭘 해주다가는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기대심리와 상대방의 역량은 다르니까요. 이 시대는 매일이 시험의 연속입니다. 따로 시험기간이 없는, 출제 범위가 존재하지 않는, 게다가 아브라함과 비슷하게 가진 것을 갑자기 내놓으라는 이해가 안되는 시험이 닥친다면 여러분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출제자의 의도는 안 보이고요. 상황은 떡하니 제시되었는데요.
여기서 아브라함의 태도를 봅니다. 내면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뜻도 모르겠는 하느님이 시키셨고요. 하기 싫다고 그분의 눈을 피해 도망갈 곳도 없는 현실입니다. 여기에 그는 묵묵합니다. 잔머리 굴리지 않습니다. 일단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만 시킨 데로 합니다. 이른바 ‘순명’ 입니다. 어떤 분은 이걸 시킨다고 굳이 하는 아브라함이 이해 안 가실 수 있지만, 지금의 교회가 2천년간 올 수 있었던 배경은 이런 순명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자기 성질을 죽이는 자세가 윗분들이 보기엔 오히려 감동을 일으킵니다. 정말 그는 칼을 잡고 죽이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제 하느님은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요. 제일 중요한 자식까지 바치려는 시도에 하느님은 감복합니다. 거기서 상황은 달라지지요. 그를 아셨으니까요. 여러분도 이런 감탄 어린 시도를 하실 수 있겠는지요? 복음에는 예수님의 변모사건이 나옵니다.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우리도 당신을 잘 따른다면 그런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예고편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힘들게만 여기지 말라는 뜻이지요. 묵묵히 해나간다면 복받으리라는 약속입니다. 예전 어떤 자매와 면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결혼한 지 7-8년 되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부르셨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답니다. '너도 이제 알 때가 되었으니 얘기하마.. 우리 재산이.. 이 정도 있고,, 부동산 건물이 이만큼 있으며....' 솔직히 자신은 남편이 좋아서 결혼을 했고요. 결혼할 때도 자기 집안이 더 나은 줄 알았답니다. 그런 줄 몰랐다는 그녀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해옵니다. '저 시험에 통과한 것 맞죠?' 그동안 말없이 시어머니는 쭈욱 지켜봤던 겁니다. 만약 며느리가 본인 성격대로 했다면 아마 국물도 없었겠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그래서 우린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하려들면, 낮은 차원의 세계만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혹 누구는 ‘나는 그런 행복만 얻을래요.’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희생 어린 자세가 더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거기서만 맴도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놓여진 것은 더 한 것도 얻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