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일. 욥 7,1-7; 1고린 9,16-23; 마르 1,29-39
요사이 노년인구가 늘어갑니다. 예전엔 관심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현실을 만나는데요. 얼마 전 평범한 어르신들이 쓴 하이쿠가 있습니다. 하이쿠란 일본시로 17글자 내외의 한 줄로 쓰는 시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하면 3줄로 나뉘는데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을 터인데..처음 듣는다’ ‘연세가 많으셔서요..그게 병명이냐? 시골의사야?’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마지막으로 92세 할아버지가 쓴 시입니다.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어’ 자신의 슬픈 현실을 위트있게 웃프게 표현했는데요. 그렇습니다. 우린 다 나이가 들고요.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우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나를 돌봐야 할까요?
오늘 말씀들은 사뭇 힘든 고역의 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처지를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하며 고통스러움을 나타내고요.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며 “다른 이웃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 며 묵묵히 또 떠나시고요. 2독서는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며 담담히 자신의 처지를 말합니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와 냉대 속에서 견뎌내기도 해야 합니다. 이처럼 믿는 이들에게 현실은 늘 도전을 받습니다. 그 도전은 기존의 상식와 그것을 넘는 초월의 영역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벌어집니다. 상식을 지킬 때, 나는 기존 것에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주위 평판도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만 맴돌지요. 초월의 영역을 택할 때, 기존 삶에서 불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들의 눈에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적어도 우리 눈에는 가능성을 보이고, 그것이 주는 선한 이익속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악의 유혹이 무엇인지 보이고요.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나를 찾을 수 있는데요.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도 땅에 발을 딛으며 가셨습니다. 지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