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일. 나해
여러분은 무엇을 믿으십니까? 단순하게 예수님이요,하느님이요..라는 답변을 원한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감각적인 것을 초월하는 범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사람끼리도 마찬가지인데요.가족,친구들을 얼마나 믿나요? 과연 믿을만합니까?아니면 그동안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은 기억 때문에 신뢰감이 떨어졌나요?이처럼 우린 현실,현상계에 살면서도 믿지 못하는 것 투성인데,과연 안 보이는 하느님에 대해 얼마나 자신을 맡기는 신앙이 나올 수 있을지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비록 교회에 앉아있으면서도 말이지요.게다가 물질주의 세상을 살면서 한편으로 물질을 넘어선,현상을 넘어선,무언가가 있다고 여기기에 우린 이곳에 모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야들이 있지요. 신,영혼,사랑,용서,배려,나눔 등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각을 넘어섭니다. 굳은 내 마음을 변화시키고 바꾸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듣긴 들었지만, 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스스로 금을 긋곤합니다.‘나는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과학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것만 신뢰하기 때문’ 이라면서요. 하지만 여기엔 이런 이유도 숨어있지요. ‘무탈하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살면서 이제 별로 놀라고 싶지도 않고요. 처음부터 한계가 금을 긋고 사는 편이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예측이 가능하면 편하지요. 하지만 여기엔 이런 것도 숨어있습니다. 더 이상 삶의 갈망이나 갈증 또한 없는 건조함을 말이지요.
예전 개신교 신학교에서 학생과 교수진 50명 가량이 가톨릭 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가톨릭이 궁금하다는 이유였습니다.예정된 방문이었기에 우리측에서도 나름 준비를 했고요.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강의 주제가 있었는데요.그 제목은 ‘영성이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좀 의아했습니다. 그야말로 ‘말씀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500년 전 가톨릭을 나갔던 이들이 지금에 와서 성경에도 없는 영성을 왜 궁금해할까?라는 점이었습니다.하지만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자기들 신자들에게 대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실상은 말씀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족함의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는데요.물론 자기들도 기도를 하지만,성령을 찾으며 부르짖지만 뭔가 부족한 그 무언가를 만났기 때문인데요. 그들은 갈증을 느꼈던 겁니다. 자신들이 애를 쓰지만 뭔가 모를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느꼈기에,답을 찾고자 더 긴 역사를 가진 이곳을 방문했는데요.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려고 하셨을까? 그게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에 대한 궁금함을 가질 때, 나는 더 이상 굳어버린 신앙인이 아닐 수 있는데요.
오늘 복음에는 더러운 영이 들린 이가 예수님께 말을 건넵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여기에 당신은 “조용히 하여라”라는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예수님이 정확히 누구신지 밝힐 타이밍이 아닌데 이들은 주님을 알아보고 산통을 깨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점입니다. 우리 중에 가끔 미래가 궁금한 이들이 있습니다. 점이나 타로, 무당 등을 통해 교회에서 제시하지 않는 다른 방법에서 답을 얻으려 합니다.하지만 여기엔 이런 점이 있습니다. 그들도 이성과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와 다른 귀신의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말로는 그런 사실을 숨기려 통계학적이라는 말을 덧붙이지만 역시나 신의 영역입니다. 신 중의 신인 하느님은 괜히 남의 미래를 언급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분은 우릴 존중하시기에 현실속에서 내가 올바른 판단을 하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를 키울 때,엄마가 처음부터 다 해주면 자립심을 키울 수 없듯이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터 주어야 좋은 교육 방법이듯 말이지요.이처럼 너무 개입하지 않으시면서 우리가 현실 속에서 뭔가를 터득하길 바라십니다. 2독서에도 나오지요.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라고요.물론 어떤 분들은 그런 하느님이 답답해 보일 수 있겠지만요. 그러기에 화답송에도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하시는데요. 그만큼 잘 들여다 보고 계시는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나는 갈증을 느끼나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열린 만큼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