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월요일. 2사무 15,13-16,13; 마르 5,1-20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춘추에 나오는 말로써 춘추의리를 어기는 자를 표현하는 데서 쓰였고요. 맹자 때는 등문공장구하(文公章句下) 나왔는데요. 이는 ‘반란을 일으키는 신하와 부모를 해치는 자식’ 이라는 뜻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나 역적을 일컫는 말인데요. 세상 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몹쓸 사람을 일컬을 때 씁니다. 어떤 시대나 혼란스러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른 가치관을 세우려 하지만 하극상은 벌어지는데요.
오늘 다윗의 여러 아들 중 셋째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전부터 다윗은 이미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하나 주님께 물으며 자신을 다져갔던 그였지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서 그의 삶은 예전 같지 않게 다른 나라 왕처럼 변해갑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의 화신이 되어갑니다. 게다가 배다른 형제인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을 범하지만 여기에 아버지 다윗이 맏아들 암논이 한 행동에 별 말을 하지 않자 압살롬은 반기를 든 것입니다. 물론 더 읽다보면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켰기에 다윗의 부하 요압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은 분명합니다. 복음에도 주님을 알아본 ‘군대’ 라는 악령 떼는 예수님을 알아보지만 자신들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것을 보게 됩니다. 서로의 신뢰가 깨어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지 못하고요. 부모, 자식 간의 사이도 금이 간다는 것을요.
예부터 난신적자들은 관직의 권세를 믿고 나쁜 짓을 꾀하며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부의 축적과 개인의 영달을 좇는데 혈안이 돼 있다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성종실록에서 ‘잘못되어 난신적자로 몰리며 본인은 물론 구족을 멸한다 해도 시원치 않다’ 고 했습니다. 법의 심판은 공소시효가 있지만 역사의 심판은 공소시효가 없다는 뜻인데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라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의 대사는 한편으로 처량하게 들립니다. 권력을 쫓다가 본인 스스로 재처럼 불타버린 끝을 아는 우리로서 과연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까요? 과연 우리 삶이 제대로 된 방향을 가고 있는 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