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화요일

2024. 1. 30. 오후 3: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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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4주간 화요일

 예전과 지금의 차이를 알 때 지금을 잘 살아갈 수 있는데요. 예전 어떤 청년이 울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어릴 때 헤어지고 이혼을 했고, 그래서 내가 두 분을 오가면서 만나곤 하는데, 거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결국 자녀인 내가 문제였기에 부모님이 갈라선 것은 아니었을까?’ 하면서 본인을 탓하는 말을 가슴 아프게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살도 되지 않을 때 헤어진 것이 어디 자녀의 잘못이겠습니까?

부모의 잘못이었지요. 하지만 아픔을 겪던 그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데요.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누군가 잘못을 하면 그 사람을 탓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그랬으니까 그랬겠지..’ 하지만 이젠 여러 연구가 세분화되면서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부모님의 문제였지, 네 잘못은 아니야. 그러니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하지마

 이건 성경의 시대도 그러했습니다. 그 당시 중병에 걸린 이들을 대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저런 벌을 받은거야 이런 태도와 생각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더 험하게 내몰았습니다.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지요. 얼마 전 우리도 그러했습니다. 코로나가 막 퍼지던 20년도 3월 무렵,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된 지역을 알려주는 앱이 생겼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그 지역을 피하라는 의도였겠지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앱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전 지역이 다 전염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리고 감염자를 피하라는 의도는 있었겠지만 그 사람을 도와주려는 의도는 담겨있지 않았는데요. 어려울 때 사랑을 베푼 이들은, 당시 의료진의 노고 외에 또 누구였을까요? 교인이나 교회도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으니까요.

 오늘 예수님은 아픈 이들을 찾아가십니다. 그러면서 애처롭게 바라보시고요. 하혈하는 여인의 갑작스런 등장에도 노여워하지 않으시고 그녀의 믿음을 보시며 고쳐주십니다. 독서에도 자신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아들의 죽음에 그만 슬픔에 잠기고 모두가 숙연해집니다. 주님은 이런 아픔을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도 두려움을 이기고 남탓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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