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성모 신심 미사. 루카 1, 26-38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무엇을 하실지 알고 계십니까? 이것을 아는 사람과 자신의 관심에만 꽂힌 사람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데요. 오늘 말씀의 보통 풀이는 이러합니다. ‘천사의 방문에 성모님이 놀라시지만 이내 잘 받아들인 순명의 삶을 택하고 결국 우리도 부르심에 잘 따르자’ 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궁금함은 ‘성모님 입장에서는 뭘 기대하셨을까?’ ‘어떤 기쁨을 바래셨을까?’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저 부담스럽고요. 반발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다들 하기 싫어하는 그런 삶을 쉽게 택하겠습니까?
여기서 성모님은 자신의 처지를 보신 듯 합니다.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한계’, ‘그저 남들처럼 사는 것이 전부일까?’, ‘주님의 딸로서 뭘 해야 할까?’ 등에 대해 평소 고민이 많으셨을 듯 합니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천사의 제안에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왔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대해 생각도 안 해본 사람에게서 이런 대답은 불가하지요. 나를 통해서 큰 기쁨이 이뤄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기다린 사람의 예라 하겠습니다.
살면서 우린 나의 삶을 탐구해야 합니다. ‘내가 남들과 어떤 면이 다른 지’, ‘그 다름에서 어떤 준비와 행복을 가져다 줄런 지’, ‘다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만의 길을 마련해주시고, 그 길을 갈 때 참 기쁨에 다다를 수 있음’ 을 말입니다. 물론 명확하게 알고 가는 길은 아닙니다. 뭐가 벌어질지 확실히 모릅니다. 여기에 당신은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시고 초대하십니다. 하느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꼭 필요하진 않습니다. 조물주께서 알아서 다 하셔도 상관없지요. 오히려 우리 같은 사람이 귀찮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우리를 부르셔서 뭔가 같이 하길 바라십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공유하길 바라시죠. 하지만 자기의 관심에만 꽂힌 이들에게는 ‘판’이 어찌 돌아가는 지 모르면서 남들 따라가다가 마치 불나방처럼 삶을 망칠 수도 있는데요. 자기가 누군지 조차 몰라서 말이지요. 이것을 잘 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참된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