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가끔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나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자극일까?를요. 우린 의지도 있고요. 다른 영향도 받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영 아닌 것에 대해서 꿈쩍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소신이나 신념이 중요한데요. 하지만 그릇된 소신은 자기 안에 갇혀나온 고집으로 나온 주장이기에 모두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따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따르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하는 지를 봐야 할 것인데요. 이른바 나를 막아서는 ‘걸림돌’ 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돈, 부모, 집안, 학력 콤플렉스 등이 될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 여기거나 여기에 메여있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판단과 분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픈 예이지만 예전 신학생 때 저보다 몇 년 위 선배가 신학교를 나간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서 고민하던 중, 자신이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면서요. 물론 담당 신부님은 이를 말리며 우린 더 큰 길을 걷는 중이라는 타이르는 말씀을 하셨지만 결국 그의 고집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가끔 그 사건을 떠올리며 ‘나를 막아서는 것은 무엇일까?’ 바라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불효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지만 스테파노 성인도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목숨마저 주님과 바꿀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고요. 우리 신앙의 선조도 그런 모습을 따랐기에 우리가 지금 교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인데요. 내가 어느 부분에 취약한 지는 하느님도 아시지만 악마도 압니다. 효도가 지극한 이에게는 ‘부모 얼굴을 아른거리게 만들 것’ 이고요. 돈을 중시하는 이는 ‘재물이 주는 편안함’을 흔들어댈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이는 어디에도 속박되거나 메이지 않음이 필요한데요. 그럴 때 우리의 길을 의연히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