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이사 41,13-20; 마태 11,11-15
‘나는 나의 시대를 잘 살아내고 있나요?’ 누구는 세상 흐름에 끌려다니고요. 누구는 세상과 영합을 잘하고요. 또 누구는 뭔가 비젼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가 어릴 때 관상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허자강이란 관상가가 잘 살피더니 이런 말을 내놓습니다. ‘당신은 치세(治世)에는 능신(能臣)이요, 난세(亂世)에는 간웅(奸雄) 될 것이요.’ 나라가 평안하면 충신이지만 혼란스러울 때는 간신배가 될 것이란 말에 조조는 껄껄거리며 웃었다는데요. 결국 그는 난세의 시대에서 음흉한 삶을 삽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렸지만요.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살던 16세기는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전쟁 이후 현실이 힘들어 미신이나 기묘한 신심이 들끓었고요. 황홀감이나 환시를 보려는 통에 ‘예수님을 봤다, 성모님을 봤다’ 는 등에 열중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다분이 잘못된 신심이었고요. 종교생활을 하면서 실제 삶은 더 어지러운 삶이 되는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요한은 황홀경을 쫓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다면서 ‘이성이 합일에 이르려면 감성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비워야 한다’ 는 말을 갈멜의 산길에 적으면서 그에게 영향을 준 이냐시오의 ‘원리와 기초’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성인은 고요 잔잔한 이성을 가지고, 하느님께 향한 마음 가지기를 비워야 한다’ 고 말하면서 믿는다는 말은 곧 기다림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복음에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는뜻은ㅠ요즘처럼 혼란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사람을 돕기보다 오히려 이용하고, 속이는 세태에서 올바른 사랑을 짓밟는 현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더 나은 무언가를 주시려는 데 우린 헛된 것을 쫓고 있던 것은 아닌지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