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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군대 행정병 시절, 매월 내려오는 두꺼운 공문철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사고 사례집’입니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스러운 비윤리적인 사고까지 게시하여 전 군에 배포시켜 주의를 주고 있었습니다. 가끔 교회에도 이런 공문이 나옵니다. 올해만 해도 2건이나 다른 교구에서 벌어진 내용이었는데요. 주 내용은 기도해준다고, 복음전파를 한다지만 그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난 것을 가르치거나 금품을 요구하는 사건이 실명으로 거론되면서 공문으로 하달되어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게 하는데요. 전 교구가 주의하라면서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다니엘이 임금에게 공짜로 설명해준 것처럼 주님의 사랑은 ‘댓가를 받지 않는 무상성’ 에 있기 때문인데요. 어떤 것도 받지 않는 자세에서 베풂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두려움이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난 내 소명을 전하는데 그 의미를 둔다.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다고 내게 큰 이득이 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한다면 나도, 당신에게도 손해이기에 할 수 밖에 없다’ 는 담담한 자세는 뭔가 이득이 없으면 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내가 너에게 언변과 지혜를 주었” 으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각오를 다지면서, 할 도리를 다 하라는, 지상의 과제를 던지십니다. 옳은 말을 한다고 모두가 좋아라 하지 않는 세상에서, 오히려 안하고 달란트를 묻어버리고, 미나를 싸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까요?오히려 나눠야 할텐데요. 거저 베푸시는 은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그 질문에 각자 답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