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2023. 12. 9. 오후 2: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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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일.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여러분은 어떤 세상을 만나고 싶습니까? 그러면 지금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나요? 벌써 여기서부터 차이가 나지요? 만나고 싶은 세상과, 살고있는 세상의 차이를 봅니다. 아무리 우리가 국가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세상이 더 낫고 좋은 지 정도는 압니다. 물론 여기에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공사(公私)의 분별이 된 판단기준이어야 합니다. 우린 이미 압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똑똑한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진 돈이 많다고 해서 뭔가를 다 이룰 수도 없습니다. 다들 가진 욕심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악을 멀리하고 참된 것을 쥘 수 있는데요. 여기서 뭔가 기준이 필요한데요. 벌써 10여 년이 지났습니다만,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저절로 들고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안 팔리는 인문학 책이 잘 팔린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세상의 부조리를 봤기 때문일 것이고요. 계속 이러면 안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던졌지요. ‘무엇이 보편적인 정의인가?’ 여기에 저자는 말합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물론 이 책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서로의 분배정의에만 주안점을 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설명이 불가하지요. 우린 우리만의 잣대가 있습니다. 세상을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알고 믿기에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보는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배우고 실현하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성령을 통해 나온 교회 가르침에 입각해 접근할 때, 그동안 세상의 많은 이즘이 생기고 사라지는 와중에서 목도하며 관찰하고 진단했던, 교회의 2천년의 데이터를 찾을 수 있는데요. 그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몇몇 학자의 의견에서만 치중하지 않는 넓은 시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림 2주일은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입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지 계약을 맺고, 거기에 맞춰 일하는 것으로 끝맺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완비되면 완비될수록 그 틈을 노리는 집단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바로 악이지요. 그 악함은 미처 종이에 다 쓰이지 않은 그 무언가를 합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감히 생각하지 못한 그 무엇을 합니다. 자 보십시오. 이미 주변에서 벌어집니다. 하청직 노동자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것에 대처하는 원청 회사 대표자의 태도를 봅니다. 소송을 벌이지만 결과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망한 본인에게 몰아갑니다. 실질적으로 고용하지 않았고, 회사대표는 위험성도 몰랐다. 모두 하청 내부에서 진행한 것이다참으로 멋진 자본주의입니다. 언제 사고를 당할 지 모르는 대다수 노동자들은 목숨을 내놓으며 오늘도 일하는데, 그들을 쓰는 관리자들은 나 몰라라 합니다. 현대세계의 구조적 불의에서는 대중이 자기 운명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부와 권력의 정책 결정이 소수의 수중에 들어가 집중하도록 촉진하는 현실에서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남을 비판하기 앞서 교회 안에서 행동규범, 교회 재산이나 그 생활양식을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자체적으로 교회가 먼저 정의실천을 하는 지를요. 그러면서 살핍니다. 하느님은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시고,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를 위해 간섭을 하십니다. 이른바 역사하시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관계를 밀접하게 연결하십니다.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인간 해방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메시지는 크게 보아서 세상의 정의를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모두들 세상이 발전되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진보라는 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과연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있는가? 라고요. 예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인간은 인간으로서 발전하고 진보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퇴보하고, 그의 인간성에 있어서 타락하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질문하면서 현대의 발전이 진정한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답변했는데요. 당신은 우리를 만드실 때,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드셨다 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닮아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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