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일. 나해
교회엔 많은 분들이 오는 곳입니다. 성별, 나이가 다르지만 생각도 다릅니다. 당연히 신앙의 정도가, 정도에 따라 차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처음 만나는 대다수의 교우분들은 참 순하십니다. 교회가 지시한 대로 잘 믿고 생활하시는 분부터, 하나씩 따져보면서 믿는 분들, 편협하게 믿고 싶은 것만 개인적으로 선별하여 믿는 분들까지 있지만 그럼에도 잘 따르십니다. 두 번째로 교회 안에서 자아실현을 꿈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열정이 있는 분들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시간과 돈을 가지고 있기에, 교회 안에서 나름 의미있는 일을 하려 듭니다. 게다가 인정을 받고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분들과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의 유형의 열심하다는 분들보다 인내심은 부족하기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으면 떠나는 형태가 많습니다. 3번째 유형은 교회에 적만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형태로서 다원주의적 성향 탓에 다른 신앙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이른바 탈제도적 성향입니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움직입니다. 4번째 유형은 사회활동에 관심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형으로, 신앙과 사회생활을 일치시키려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교회 안에서 지내기 힘들 수 있습니다. 본인의 형태를 주장하기에는 숫적 열세에 놓여 있고요. 사회교리에 대한 마인드가 여전히 저변에 깔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5번째 형태는 단순히 미사, 성사에만 참여하는 형태로서,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아름답지 못한 것을 볼까봐, 다른 이들로부터 상처받을 것을 미리 꺼려하기에, 단체활동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의무만 하겠다는 형태입니다. 자~ 여기에 여러분은 어느 곳에 계시나요?
앞서 여러 유형으로 분류를 해보았지만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복음에도 예수님이 성전 앞의 시장을 둘러엎자 유다인들은 따집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표징을 보여줄 수 있소?” 그렇지요. 보고 싶지요.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같은 유대인이었던 마태오가 구약성경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복음서를 저술한 후, 그제서야 알아들었습니다. 그분이 예전부터 예언된 분임을요. 당장 자기네가 원한 유형의 분이 아니라서 처음엔 반대를 했었던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인들은 왜 믿었을까요? 이전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유명한 철학자가 배출된 나라로서 지혜를 찾는 이들인데, 왜 그들은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리스 철학에는 이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건 인간 내부에서 물어보는 원초적인 질문인 ‘과연 신이 있는가?’ ‘영혼은 불사불멸한가?’ ‘사람에게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나열은 하였을 뿐, 명확한 설명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대답을 머리로 한 것이 아닌, 직접 구세주가 역사 속에서 몸으로 보여주시며 약속을 이뤄내심을 당대 사람들이 보고 알았기에, 신앙의 전파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즉, 보고 듣고 체험한 이들의 증언과 그로인해 변화된 삶이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는 그냥 성당 건물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하느님의 나라, 그분의 품 안임을 알려주신 셈인데요. 그랬기에 이렇게 기술되어 있잖습니까? “제자들은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당장은 몰랐었지만, 나중에 헤아리면서 차차 이해가 된 것이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내 생각,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답일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지요. 여기는 세상에서 못한 것을 해소하고 푸는 곳이 아니고요. 조용한 분위기라서 고고한 취미생활을 하는 곳도 아닙니다. 이곳에 세워지고 지어진 이유를 알아야 제대로 생활하겠지요. 게다가 순교의 역사를 통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며 지키려고 했던 이유를 알 때, 믿고 싶은 대로. 하고싶은대로 하면, 안되는 곳임을 파악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실수와 오해 속에서 이 교회는 자리를 잡아갔고 주님의 뜻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