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 금요일

2024. 3. 29. 오전 9: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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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 금요일

 한 사람의 인생을 몇 개의 단어와 몇 줄의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을까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놓여보지도 않았고요. 그가 느낀 고통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을 이해한다는 말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릅니다. 솔직히 잘 모르니까요. 그런데도 우린 쉽게 폄하합니다. ‘나라면 그렇게 안 했겠다’ ‘과연 생각이 있는거야?’ 라며 쑤군댑니다. 어쩌면 살기 힘든 세상이라서 남을 헤아리기 힘들어 하거나, 무감각해져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에게 처한 환경에 놓이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으로 사시며, 우리에게 뭔가를 해주셨으나 그걸 바라보는 반대편 입장은 불편합니다. 한편으로 기존 기득권인 자기네를 따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정치적인 식견이었고요. 또 한편으로는 군중 선동에 휘말려서입니다. 그로인해 진리에 눈감아 버립니다. 솔직히 누가 그런 취급을 받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의 심리기질 중에 회피형 성격장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거절이 두렵고, 반대가 두려운 유형입니다. 책임을 맡는 게 어렵고요. 수치를 당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보다는 사물이나 동물을 통해 풀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피하기만 한다면 제대로 해결을 할 수 없겠지요. 여기서 주님은 정공법을 쓰십니다. 그것도 자신을 낮추시면서, 자신에게 처한 현실을 피하지 않고 욕먹고, 매 맞는 일이 있어도 침묵하며 맞서신 방법으로요. 물론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인도의 성녀 마더 데레사에게 어떤 기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150cm도 안되는 몸으로 그 많은 사람을 보살필 수 있었습니까?’ 이에 답합니다. 저는 제게 다가오는 사람을 그때마다 껴안았을 뿐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처럼 다가오는 현실을 피하지 않고 한 사람씩 껴안았습니다. 그러면서 모두를 품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현실이 힘겹지만, 뒷담화나 쑤군댐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껴안는 것 말입니다. 이 시대는 맞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맞서면서 주님처럼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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