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수요일
고린토 1서 15장 9절에 나옵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입으로는 영원함을 추구한다지만 실제로는 먹고 사는 것에 메여있는 우릴 봅니다. 물론 현실의 무용함을, 쓸데없음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불로장생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지요. 세상이란 바닥에서 영원할 수 있나요?
예전 같진 않지만 서울의 평신도 협회단체 중에서 가톨릭 노동 장년회가 있습니다. 줄여서 가노장이라 하지요. 1964년 5월. 사회의 혼탁함을 보면서 하느님의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취지 아래서 생긴 단체입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만들진 않았습니다. 이곳의 전신은 가톨릭 노동 청년회라고 1925년 벨기에에서 까르댕 추기경님에 의해 세워진 단체입니다. 이곳이 말하는 정신은 관찰-판단-실천입니다. 관찰은 실생활에서 벌어지고 만나는 원인과 과정, 결과를 바라보고요. 관찰을 통해 얻은 것을 신앙과 양심에 비추어 보는 것을 판단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을 실천이라 말합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단체의 정신에서 세상에서 노동하는 인간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사회와 개인 스스로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린 이미 많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 욕심이 불러들인 걱정과 불행. 결국 그것들이 우릴 비극으로 이끄는 결말을 들으면서 이제 우린 어떤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는 말씀은 참으로 위안을 줍니다. “설령 여인들은 잊어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는 말씀에서 결국 우린 무엇을 쥐어야 할까요? 우린 자유롭게 살려고 여기 왔습니다. 그 자유란, 하고 싶은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해야 할 것을 움켜쥐면서 얻는 자유입니다. 좀 다르지요?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참답게 살려면 주님이 주신 질서 안에서 내가 노닐 때, 우린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데요. 길을 잃지 마시고 잘 걸어가시기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