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화요일
오늘 독서는 자칫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여기까지 듣노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즘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이지요. 하지만 공산주의가 있기 전부터 교회는 있었습니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아니라 순수한 형태의 그리스도교’ 라고요.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의 편중을 두지 않겠다’ 는 정신이 있었기에 일부러 그랬던 것입니다. 애덕의 차원이지요.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이유를 3가지로 말합니다. 1) 인간은 자신에게만 속한 사물을 더 잘 돌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2) 사물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 질서있게 사용해서 중복, 혼돈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3) 개인적인 소유를 통해서 사회질서를 유지합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것은 관심을 가지지만 공동의 소유는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랬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 공장이 생기면서 부의 편중이 일어납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이것을 본 마르크스와 앵겔스가 공산주의를 통해서 갖고 있던 각자의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국가가 재화를 재분배하자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의 참상을 본 이들이기에 그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정권을 유지하고자 많은 희생을 감행했습니다. 그들의 이론은 허구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고요. 노동권을 침해하면서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그로인해 창의성과 자발성을 없애면서 경제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도에 나온 ‘모든 형제들’ 이란 교황문헌에 보면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멀리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여라’ 성 프란치스코는 물리적인 거리와 무관하게,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서 살고 있는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알아보고, 가치를 인정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열린 형제애의 핵심을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이 자유시장 경제주의를 추구하면서 인간적 기본권을 무시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문헌이 나온겁니다. 요새 선거를 맞이하면서 정치체계를 이용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양극화시키며, 자기들에게만 유리한 특혜를 주는 지도자는 결국 공산주의자들처럼 자기들의 권력만을 탐할 뿐 국민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 올려져 모두를 구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참 지도자는 주님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