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그동안 우린 이런 식으로 배우고 얻었습니다. 책을 읽거나, 학교나 학원의 선생님이 가르쳐주거나, 누군가 아는 사람이 알려줘서, 그리고 내가 골똘히 고민하면서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이성과 감각의 작용을 통해 얻은 것들이 세상의 지식이라면, 그걸 넘는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얻어야 할까요? 가끔 이런 경우를 만나지요.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차원 말입니다. 알던 지인도 오랜 기간을 만났지만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하물며 하느님에 대해서는 더 그런 경우를 보는데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실상 예전부터 말해왔지만 진정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분야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지(無知)의 지(知)’ 라는 분야입니다. 15세기 학자 니꼴라스 크자누스는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정된 이성으로는 최고의 존재 자체, 완전한 진리, 무한하신 하느님께 접근할 수 없으나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산을 오르는 계단으로 생각하고 한걸음씩 올라가면서 접근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무한하신 지식이 인간의 손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자신의 무지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이론을 십자가의 성 요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갈멜의 영성이죠. 여기서 말하는 무지함은 지식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지(知)의 무지(無知)함인데요. 사람이 가진 이성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게 아니라 참다운 지혜를 얻으려면 이성으로 모든 것을 알려는 태도를 버리고, 그걸 넘어서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복음이 말하지요.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그래서 복음환호송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십니다. 그럼 무지의 지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건 바로 체험입니다. 생각과 감각으로 이해되지 않은 것이 가끔 나를 넘어선 무언가를 만날 때 나는 달라지곤 합니다. 왜냐하면 설명이 불가하기 때문이고, 내가 가진 언어와 생각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오시는 분” 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