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일 나해

2024. 4. 13. 오전 10: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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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3주일 나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린 불편합니다. ‘죄에 대한 언급이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들으면 괜히 억압하고 옭아맨다는 생각에 젖곤 합니다. 여러분 입장에서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여러분에게 의무감을 나열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조절한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 한편 이런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나약함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지요.

 사람이 가진 나약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른 소리를 내야 할 때 주변의 눈치를 봅니다. 당면한 문제를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남이 대신 해주길 바라면서 안 하고 싶은 게으름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하려 드는 집착과 야욕이 있습니다. 여기에 교회는 이런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사람들이 현상적인 것을 다룰 때 근원을 다루고요. 단순한 해결을 원할 때 문제의 시스템을 보려 했습니다. 종교(宗敎)라는 단어의 뜻은 근본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 얼마나 심도있게 보셨나요? 고해성사를 해야할 때, 꺼내지 않고, 말하지 않고 싶은 유혹에 빠진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서그래~ 내가 잘못했지만 고해를 하지 않아도 하느님은 다 용서해 주실꺼야 라는 생각을 서슴없이 하곤 하지요. 마치 본인이 저질렀으면서 피해받은 이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세상의 흐름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의 흐름과 닮아있는 자신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우린 사람이 어떤 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답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라며 나약함을 다루면서, 2독서는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라며 더 이상 문제의 반복이 되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끊으시고자 예수님은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의 시편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며 구원사업을 펴셨던 것입니다. 이제 무엇이 보이시나요? 불편하지만 우린 우리가 가진 한계를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약점을 통해 극복하고 이겨나가는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약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제대로 아는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도 연약한 자신의 몸을 통하여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가진 나약함을 부정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 이겨나가야겠습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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