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월요일. 사도 6,8-15; 요한 6,22-29
젊은 사람 중에 가끔 찾아옵니다. 자신이 성직자, 수도자의 길을 가겠다고요. 요새 젊은 사람 찾기도 어려운 형국이라 교회 입장에서 반가울 수 있지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식별’입니다. 왜 그런 마음을 가졌는가? 하는 의도를 봐야만 순수한 이유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피곤으로 인한 도피처를 찾고 싶은 건지를 알 수 있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좀 차갑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적나라하게 보신 겁니다. 가끔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발견되는 현상 중에서 ‘교회에 오면 밖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줘서 좋다’ 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는” 자세일 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본질을 향한 탐구의 자세입니다. 빈 공약을 늘어놓는 정치가가 사기꾼들의 말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도가 뭔지 발가벗겨서 제대로 보는 자세가 될 때, 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보입니다. 대답은 ‘하느님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싶다’ 고 하지만 실은 미사 중, 기도 중에서 분심이 많이 들어가 힘들다는 토로는 그 이유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절실함’ 보다는 잡념속에 묻어있는 거기에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분심에 자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독서에 율법학자들이 스테파노를 공격하지만 그를 이길 수 없던 것은 그 자신들이 하느님보다 ‘자리’ 를 탐했기 때문인데요. 내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마태오 복음 6장21절의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찾고자 했던 참된 보물은 진짜 무엇이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