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월요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된 진리는 그 어떤 방해도 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기에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평가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메여있는 나의 차원을 넘기 때문이지요. 한 사물을 보거나, 하나의 사안을 대할 때, 우린 늘 그렇지요. 내 눈높이에서 바라보고요. 요새 시세나 평가에 나를 맞추려 듭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야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올바른 것일까요? 가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합니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손자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심하게 하거나, 화를 내지요. 하지만 이 안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내 손자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않고, 어른의 눈높이에서 평가하는 것 말입니다. 손자는 아직 어린데도 그 아이를 나처럼, 어른처럼 대하려 듭니다.
오늘 베드로는 환시를 봅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는 소리를 듣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 눈에 속되게 보이는 짐승을 먹으라는 말에 율법을 어긴다고 여겨 거절을 합니다만, 이에 주님은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기서 뭘 만날 수 있을까요?
십자가의 성 요한이 지은 ‘갈멜의 산길 3권 7장’ 에 ‘하느님께 가려면 하느님 아닌 모든 것에서 영혼을 비워야 한다. 영혼이 하느님과 합하려면 기억도 이런 형상과 지식을 없애야 한다.’ 라 말합니다. 예전의 맛에서 머물면서 그 맛에 도취되어 있으면 지금 내게 주어지는 맛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다는 말인데요. 내가 바라는 것에만 메여 있으면 참된 주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복음의 예수님이 말씀한 “나는 문이다” 라는 말처럼 참된 진리에 들어가는 문은 내가 바라는 방향에서만 열리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열리기도 합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태에서 활동하시는데도 우린 예전 경험한 것이나 사회적 관습 등에 메여있으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우린 먼저 잘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새로움을 얻는 눈이 열리고, 받아들일 마음이 생깁니다. 지금 무엇에 메여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