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일. 사도 14,5-18; 요한 14,21-26
자기를 드러내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자기 자랑부터 시작하여, 인터넷상에 블로그를 이용하여 자기를 드러내거나, 그러다보니 교회에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집니다. 신부, 수녀 사이에도 ‘방송 나온 분’ 이란 딱지가 붙으면 더 몰려듭니다. 교우들을 그렇게 이끄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그런 유명세의 맛을 본 분들은 말합니다. 좋지 않음을 말이죠. 수도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오늘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묻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제자들이 바랐던 사항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 같으신 분이 왜 음지에 묻히시려고 합니까? 이 큰 힘 한 번 보여주셔야지요.!’ 그래요.. 그래서 그러면 뭐가 남을까요? 예전 지학순 주교님 시절, 원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폈던 장일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날 아는 사람이 한 사람 생기면,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진다.’ 사람은 아는 이들의 마음과 눈에 드는 일을 하려고 애쓰기 마련이고요, 그러고만 있으면 진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법이기에 그런 말을 하던데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학자 기념일입니다. 신비로운 체험 후, 완덕의 길로 들어갑니다. 어릴 때 그렇지요. 실력은 없어도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수도 받고,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하지만 그런 반응이 부자연스럽게 만듭니다. 내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날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요. 그걸 알면 이제 진정 해야 할 것이 뭔지를 헤아립니다. 기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바라는 것을 원하지만 체험을 하다보면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남들에게 다 표현을 못하겠지만, 나 자신에게는 중요한 문제들을 알게되지요. 그러면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데요. 협조자이신 성령은 그렇게 내게 오십니다. 지금 속이 허하셔서 뭔가 남의 인정을 원하신다면 더 깊이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참된 것을 만나셔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