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작곡가 모짜르트의 마지막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레퀴엠(위령미사 때 쓰이는 전례미사곡)’은 사실 전곡 전부를 모짜르트가 만들진 않았습니다. 중도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인 콘스탄체에 의뢰로 ‘쥐스마이어’라는 제자라 일컬어진 이가 나머지를 완성시킵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았던 당대인들은 쥐스마이어를 무시했기에 그가 작곡한 부분을 빼고 녹음하거나 연주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역시나 그만큼 대신할 만한 작곡이 없음을 나중 시대가 증명하였습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도 비슷합니다. 원래는 16장 8절로 끝을 맺지만 지금 읽은 부분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후대에 전해지면서 마르코 복음서가 왜 쓰여졌는가?를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제일 처음 쓰여진 복음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도 동방박사 이야기나 유년시절 이야기도 없습니다. 바로 어른이 된 예수님부터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뭘까요? 예수님은 곧 ‘구세주, 메시아, 그리스도’ 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 나머지는 부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애도 덧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원단, 원조’ 는 모르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려운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속 생각을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르코는 짧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을 알리려 했고요. 부가적으로 붙은 것은 우리를 위한 친절이었습니다. 이처럼 제일 먼저 쓴 이유는 중요한 것을 알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괜히 내 생각대로 뭔가 덧붙이거나 또는 삭제하면 본질이 흐려질 스 있습니다. 나는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을 지켜내고 있습니까? 이것을 잘 살필 때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