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일
이 시대의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인도에서 전해오는 옛날이야기를 소개합니다. 4명의 왕자가 있습니다. 어떤 기술을 익혀야 할까? 고민하다가 세상을 다녀보면서 각자 기술을 습득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약속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동서남북으로 흩어집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다시 만납니다. 서로 무엇을 배웠는지 말합니다. 첫째 왕자는 ‘나는 어떤 생물의 뼈 한 조각만 가지고도 살을 만들 수 있어’ 둘째 왕자는 ‘나는 살이 붙어 있으면 거기에 피부를 붙이고 털을 자라게 할 수 있어’ 셋째 왕자는 ‘나는 그런 것이 있으면 팔다리를 붙일 수 있어’ 넷째 왕자는 ‘그 생물이 팔다리가 있는 완벽한 형태를 갖춘다면, 나는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아’ 이렇게 해서 자신의 특기를 선보일 수 있는 뼈 한 조각을 얻으려고 밀림으로 들어갑니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발견한 뼈는 사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첫째부터 살을 붙이고 둘째가 털을 자라게 하고, 셋째가 팔다리를 만들어 몸을 완성시키고, 마지막으로 넷째가 사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생명을 되찾은 그 야수는 무성한 갈기를 흔들며 일어나,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4명의 창조자에게 달려들어 모두를 죽인 뒤,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떠나면서 얘기는 끝납니다.
비극적인 옛날이야기지만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현대인들의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힘이 어떻게 자신을 자멸시키는지 말해줍니다. 과거 수 십년, 수 백년 걸린 것을 단 몇 시간으로 이뤄냅니다. 그러면서 정작 기계는 작동시키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는 모르면서 사용하지요. 삶의 방향은 모른 채 그저 배운 것, 하던 것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이전의 것과의 단절이지요. 예를 들어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른바 ‘꼰대’ 라 일컬으며, ‘옛날 사람’ 으로 치부하고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이런 시각은 종교에도 이어져, ‘성경’ 하면 옛날이야기로치부하면서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릅니다. 상황이 이러하면 오늘 복음인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는 말씀은 도통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 생각대로 알아서 하면 되는데, 해준 것도 없는 아버지한테 뭘 머무느냐?고 따질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이미 50년 전부터 이 시대를 예언하였습니다. 이 시대는 개인적인 것을 우위로 여기는 ‘내향성의 시대’요. 부모는 있지만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내가 만들어간다고 여기는 ‘전통을 부정하는 아버지 상실의 시대’요. 자기가 계획을 이루면 얻을 수 있다며 노력을 강조하는 ‘강박적인 시대’라고요. 여기에 몰두하지만 정작 얻는 것은 불안과 우울로 빠져듭니다. 이 시대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를 삽니다. 나와 너, 우리편과 상대편, 가족 사이에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 아닌 사람 등으로 구분 짓습니다. 구분하는 것이 편하게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이 ‘연속되는 과정’ 이란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2024년을 사는 우린, 갑자기 세상에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가 가르치던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강론 시간 대부분이 인간을 의미있는 역사적 존재로 보고 있다는 중요한 전제 조건을 놓치고 있어서’ 입니다. 왜 일부러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고, 모세, 베드로, 바오로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주님을 배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합니까? 지금도 유효하게 되풀이되는 역사적 서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속에 사람을 죽이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라 했지만 여전히 세상이 전하는 뉴스는 이와 비슷한 사건을 보도하는데요. 무엇이 느껴지시는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측은지심’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이지요. 우린 모두 상처 입은 영혼들입니다. 서로 어렵고 힘든 시기에 애를 쓰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써주고, 방향을 잡아주고, 그가 잘되게끔 인도하며, 도움을 받은 이도 본인의 노력만이 아닌, 도움받았음에 일어났음을 감사하며, 다른 이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칩니다. 그런 분이 아버지이신 하느님입니다. 당신 수난의 상처에서 머물지 않고 그 아픔을 알기에 함께 머무른다면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방황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삭막한 광야 체험을 하면서, 한편 돌아갈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기에 여기 모였는데요. 상처를 통해 치유받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