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화요일
어느 랍비가 기도속에서 외칩니다. ‘주님은 언제 오시나요?’ 그러자 천사가 나타나 말해줍니다. “오늘” 그 사실을 들은 랍비는 그날 하루를 보내다가 같은 공동체원에게 푸념을 합니다. “천사는 저를 속였습니다. 그는 오늘 메시아가 올 것이다 하였지만 실은 오지 않았거든요” 그걸 들은 이가 대답합니다. “그가 당신에게 했던 말은 이런 거였습니다. 오늘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니,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실은 시편 95장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매일매일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는 현실의 고통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 평화를 구해줄 구원자를 찾는 것이 당연하지요. 우린 상처를 안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만 이런 것 아십니까? 나무에는 옹이란 것이 생기곤 합니다. 나무 몸에 박힌 가지의 밑부분이지요. 가끔 나무로 만든 옛날 책상이나 장롱을 보면 동그랗게 뭉쳐서 주위보다 색깔이 짙은 부분이 그곳인데요. 옹이는 가지가 부러져서 생기거나 나무에 병이 생겼을 때 스스로 치유하려고 진액을 내보냅니다. 그런 나무로 제품을 만들면 이게 가공하기도 어렵고, 쪼개지지 않아서 별로 만들려고 하지 않지만 그 부분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그래서 버팀이 필요한 곳에는 그걸 대면 부러지지 않게 지탱해줍니다. 또는 공예품을 만들 때도 특이하니 쓰는데요. 나전칠기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옻나무에 상처를 내면 거기서 나온 피고름이 옻진이 되어 변색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데요. 어떤 것이든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가공하고 변할 때, 참된 것으로 거듭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오시는 때와 다가오는 사건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가 아니라 그 한 가운데로 오십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오십니다.’ 그렇게 다가온 주님의 목소리를 귀여겨 들을 때, 독서에 나온 데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라는 말씀이 그저 겁나지 않습니다. 복음에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는 메시지에서 기운을 내야 하겠습니다. 나를 거듭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까요.
